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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영화감독과 무용가가 영상과 몸짓으로 말한다면, 미술가에게는 선과 색이 언어다. 그런 작가에게 하나의 주제 혹은 상징을 위해 어떤 색을 어떻게 해석하고 사용하는가는 너무나도 당연한 고민이다. 더구나 인간이 받는 외부 자극 중 80%가 시각적인 것이라고 할 정도로, 색이 미치는 정서적·공감각적 효과는 크다.
이런 예술가의 고민과 실험을 엿보는 전시가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회화·조명·설치·음향·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작가 11명의 작품을 모았지만, 일관된 주제는 '색(色)'이다.
전시장 1층에서 먼저 만날 미국 작가 샌디 스코글런드의 '금붕어의 복수'(1981년 작)는 푸르게 칠해진 방에 붉은 물고기가 화면 가득하다. 환경오염으로 폐사한 금붕어 떼가 인간을 공격한다는 내용으로, 붉고 푸른 색의 보색대비가 강렬한 인상을 준다. 다른 작품 '웨딩'(1984)에서는 은색 장미와 장밋빛 웨딩드레스, 벽면의 붉은 딸기잼과 바닥의 오렌지색 마멀레이드(잼 종류)는 달콤하면서도 끈적거리는(걸음을 떼기 불편한) 결혼생활을 암시한다.
지하에 전시된 조소희 '…where…-색·빛 만들기'(2015)는 작은 방 크기의 전시 공간에 가는 실을 엮어 만든 무지갯빛 터널. 한 줄 한 줄로는 연약하고 위태롭던 재료가 촘촘하고 두툼한 색 덩어리가 됐다. 작가는 "실이라는 재료는 나의 다양한 작업을 아우르는 중요한 '연약한 사물' 중 하나이고, 또한 시간성을 은유하는 재료"라며 "지루한 시간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그 운동성 언저리에 배어 나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서정성을 늘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문형민은 'by numbers' 시리즈 신작으로 사비나미술관 도록 21권을 분석한다. 도록에 등장하는 단어와 색을 분석해, 사용 빈도에 따라 상위 10개의 단어와 이에 해당하는 색을 벽에 칠한 작품이다. 잡지 보그나 플레이보이, 타임즈 등을 소재로 한 이전 작품의 연장선상에서다. 이 작업을 통해 그는 이 색들이 제대로 사비나미술관의 정체성을 반영하는지 관람객에게 되묻는다.
색에서 소리, 소리에서 색을 읽어내는 특이한 작품 두 점도 눈길을 끈다. 흑백 두 색만 보이는 작가 닐 하비슨이 배우의 얼굴을 그린 작품 '새뮤얼 니컬슨의 초상(2013)'. 색을 소리 파장으로 변환하는 장치(아이보그)로 인식해 다시 그림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또 미디어아티스트 하이브(한창민)은 관람객의 얼굴을 인식한 색채를 소리로 연주하는 악기 '프로젝트 스크랴빈'(2015)을 선보인다. 전시는 10월 23일까지.
사진제공=사비나비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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