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 성장을 설명할 때 많은 분석가들이 '레드퀸 효과(Red Queen Effect)'를 인용한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 앨리스는 아무리 달려도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이 이상해 붉은 여왕(Red Queen)에게 그 이유를 묻는다. 여왕은 "(앨리스가 달릴 때 주변 풍경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니) 앞으로 나아가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답한다. 정체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우리 기업의 발전사를 비유하는 적절한 해석이다. 한국 기업은 그렇게 달려왔다.
한국은 지난해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교역액 1조달러를 달성했다. 교역액이 1,000만달러에서 1조달러로 늘어나는데 걸린 기간도 23년으로 먼저 1조달러를 달성한 국가들(평균 27년)보다 짧았다. 대단한 성과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달릴 수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과감한 M&A로 성장둔화 탈피를
필자는 올해 초 '삼정KPMG 조찬세미나'에서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기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혁신적 선도자(Innovative Mover)로 변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위한 첫째 조건은 관행적ㆍ보수적 의사결정을 넘어선 창조ㆍ혁신의 의사결정이다. 성장동력을 자생적으로만 확보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 미래 시장을 통찰하면서 지금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인수합병(M&A) 등 핵심기술 확보전략의 패러다임을 재설정하거나, 기존 사업의 과감한 철수도 성장동력ㆍ가치창출의 한 방법이라는 인식 대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조건은 지속적인 창조혁신 경영을 위해 초점을 맞춘 M&A를 통해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기업들은 자체 역량에 의존해 기술을 개발하는 데 한계에 봉착해 있다. 성장 둔화 기조에서 벗어나려면 과감한 M&A를 통해 검증된 선진 기술ㆍ아이디어를 가져와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혁신이 필요하다. 사고의 유연성과 스피드에 초점을 두고 '최초ㆍ최고'를 선별적으로 지향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고는 새로운 고객가치 실현은 물론 시장을 선도해가기 어렵다.
셋째 조건은 전략적 비용절감(Cost Transformation)이다. 기업환경이 어려울 때 많은 기업들이 관행처럼 비용절감을 앞세우지만 지속 가능한 기업 체질을 확립하려면 사업전략과 연계, 기업 운영 사이클 전반으로 확대해 문제점을 해결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넷째 조건은 효율적인 글로벌 경영체계 구축이다. 아직 대다수 한국 기업들은 세계적 선도기업들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속도를 따라잡거나 표준화된 경영관리 체계를 구축하지 못해 진출 국가마다 비효율적인 비용 지출과 낭비를 되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글로벌 경영관리에 대한 인식 전환과 함께 표준화된 프로세스로 신속한 경영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 조건은 불확실성과 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리스크 증가다. 현재의 리스크 수준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고 예측 불가능하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뉴욕대 교수는 이런 현상을 '블랙 스완(Black Swanㆍ발생 가능성에 대한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가져오는 사건)'이라 명명하며 글로벌 트렌드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경고했다.
글로벌 경영관리체계 효율화 시급
지금은 경제적 성과에만 매달려서는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는 시대다. 환경 문제 등으로 리스크 관리 영역이 확장되고 있고, 정보 흐름이 갈수록 빨라지고 투명해지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부각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난, 저성장 시대의 불안과 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붉은 여왕의 말처럼 "제 자리라도 지키려면 온 힘을 다해 달려라. 앞으로 나아가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혁신하고 창조하라."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