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러시아를 비롯해 위기를 겪고 있는 신흥국들의 글로벌 대부업체로 부상하고 있다. 위안화 파워를 바탕으로 신흥국들을 위안화 경제권으로 끌어들이며 국제통화기금(IMF)의 기능을 퇴색시키고 나아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질서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23일 블룸버그는 중국 고위관료들을 인용해 중국과 러시아의 통화스와프 규모를 추가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 10월 양국은 240억달러(약 24조5,000만원)를 체결했는데 이 규모가 두 배인 48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앞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이 러시아 위기상황을 지원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고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장도 "중국과 러시아 간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확대하면 러시아가 현재의 위기상황을 탈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러시아에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상하이협력기구(SCO)의 틀 안에서 회원국 위기상황 지원과 동서 시베리아가스전 개발 등 협력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라고 하나 속내를 보면 이번 기회에 중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국제금융질서를 짜겠다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다. 각 국가의 외환위기 등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인 IMF가 있지만 중국이 러시아 지원을 중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SCO의 틀 안에서 하겠다고 못 박은 것도 이 때문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2010년 이후 통화스와프를 활용해 경제위기에 빠진 신흥국들에 적극적으로 '구제금융'을 지원해왔다. 10월에는 통화스와프로 아르헨티나에 23억달러를 제공했다. 미국 헤지펀드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아르헨티나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진 지 2개월 만이다. 또 이달에도 중국은 10억달러의 추가 자금을 아르헨티나에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하락으로 국가 디폴트 위기에 빠진 베네수엘라의 구원투수도 중국이었다. 외환보유액이 11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베네수엘라는 중국으로부터 40억달러를 받으며 외환보유액을 210억달러로 늘렸다. 중국이 2007년 이후 베네수엘라에 빌려준 돈은 470억달러에 달한다. 베네수엘라의 최대 채권국인 중국은 채권상환을 원유로 받는다. 외환위기에 빠져 중국이 구원의 손길을 내민 두 국가의 공통점은 미국과 정치·경제적으로 원활한 관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미국 주도로 운영되는 IMF의 지원이 껄끄러운 이들 나라에 중국이 막대한 위안화를 바탕으로 손을 내밀며 또 다른 국제금융질서 구축의 기반을 닦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는 "중국이 그동안 미국 주도의 금융기구로부터 소외되며 미국의 독주가 못마땅했던 신흥국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글로벌 대부업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0년 이후 중국은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기 위해 현재 28개국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했고 올 들어서만도 스위스·아르헨티나·러시아·캐나다 등과 신규로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으며 위안화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앤디 시먼 스트라톤스트리트캐피털 펀드매니저는 "러시아를 비롯해 신흥국들에 대한 위안화의 영향력 확대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중국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위안화 국제화를 가속시킬 것"이라며 "결국 우크라이나에서 비롯된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은 장기적으로 중국에 이익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이 신흥국 구원투수로 등장한 데 대해 중국 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루블화 가치 폭락 이후 위안화 가치도 덩달아 내려갈 것이라는 걱정이다. 특히 환율변화로 통화스와프 협정에서 중국이 손해를 입을 것이라는 시장의 루머는 인민은행을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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