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과학기술대에서 4년 만에 첫 졸업생이 배출되다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이승률(65·사진) 평양과기대 부총장은 21일 오전 서울 양재동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이날 첫 졸업생을 배출한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지난 200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으로 설립이 본격화된 평양과기대는 남북 관계의 부침 속에 2010년 10월 첫 입학생을 받았다. 현재 500여명의 북한 학생이 재학 중이며 △컴퓨터전자공학 △국제금융경영(IFM) △농생명식품공학 3가지 전공으로 나눠 수업하고 있다. 100% 영어로 수업이 이뤄지며 미국·캐나다·중국·호주·독일 국적을 가진 교수 70여명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부총장은 평양과기대가 남북 관계 개선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평양과기대에서 주요 선진국 지식을 습득한 관료들은 향후 북한의 국제화나 남북통일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미 관계를 중시하는 북한 내부에서도 '미국을 알아야 한다'는 흐름이 있는 만큼 평양과기대 출신 인재들이 향후 북미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남북 교류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평양과기대를 주축으로 한 남북 산림녹화 사업이 활성화돼 한반도 긴장 완화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총장은 "고건 전 총리가 남북녹색경제협력을 위해 올 3월 창설한 '아시아녹화기구' 또한 평양과기대를 창구로 하고 있다"며 "평양과기대를 통해 농업과 임업 전문가를 양성하는 방안이 추진되는 등 남북 관계의 중요한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양과기대 학생들은 김일성종합대·김책공업대·평양컴퓨터기술대 등에서 2년간 수업을 받은 학생 중 면접 등의 실기과정을 통해 선발된 엘리트들이다. 이들 중 학사는 1년, 석사는 6개월간 영어 집중교육을 받아 영어실력이 매우 유창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날 학위를 받은 석사 졸업생 44명 중 절반가량은 북한 관료로 일하게 되며 나머지 절반은 박사과정으로 진학하거나 영국 케임브리지대·웨스트민스터대 등으로 해외유학을 가게 된다. 평양과기대 측은 북한 당국과 협의를 통해 학생들이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인턴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렇듯 평양과기대가 첫 졸업자를 배출하며 순탄한 행보를 이어가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위의 관심과 독지가들로부터의 지원이 대부분 끊겨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발 해킹이 잇따르던 지난해에는 평양과기대가 북한 해킹그룹 양성소라는 지적이 제기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부총장은 "현재 교수들이 무보수로 수업을 진행하는 만큼 수업에는 문제가 없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평양과기대에 대해서는 남북을 잇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로 장기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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