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한동훈 부장검사)는 국내 IT 대기업을 상대로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일본 베어링 제조업체 미네베아와 한국 판매법인 한국엔엠비를 각각 불구속 기소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들은 2003년 6월부터 2011년 7월까지 약 8년동안 동종업체 일본정공(NSK)과 짜고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거래처에 납품하는 소형 베어링 가격을 동시에 올리거나 내리고 물량을 나누는 방식으로 반독점 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네베아는 지난 1951년 설립한 세계 1위 소형 베어링 생산·판매업체로 작년 매출만 4조6,000억 원에 달한다. 또 국내 시장에서 56%의 압도적 시장점유율을 기록 중이다. NSK도 같은 분야 세계 2위 기업이다.
올 1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에 따라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이들 2개사가 독보적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담합 행위를 한 것으로 보고 8개월 넘게 수사한 끝에 국내 법정에 세웠다. 미네베아 측은 공정위 조사에서 본사 간 합의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지만 검찰에서는 혐의를 인정하고 재발방지 약속도 했다. 다만 NSK는 리니언시(자신신고자 감면제도)로 형사처벌을 피했다.
이처럼 국내 IT 대기업을 상대로 10년 가까이 일본 회사들이 가격·물량을 ‘짬짜미’할 수 있었던 데는 높은 기술장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담합 품목인 소형 베어링은 전자제품·건설기계 제조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소재다. 0.00001㎜ 단위까지 계측·제조하는 정밀 기술이 필요해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듣는 유럽기업들도 거의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시장도 지난 2012년 기준 국내시장 점유율은 미네베아가 56.3%, 일본정공이 24.2%를 차지했다.
담합은 국내 업체들의 가격인하 요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미네베아 본사의 베어링 총괄부장 M씨는 일본정공 전기정보부장 N 씨를 2003년 6월초 일본 도쿄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 상대 거래처에 같은 폭으로 값을 내린 VTR용 소형 베어링 가격을 먼저 제시하기로 입을 맞췄다.
삼성전자·LG전자 등 거래처를 나눠 먹으면서 인하 폭을 최대한 줄이고 점유율은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양사는 베어링 가격을 0.33달러에서 0.315달러로 동시에 내려 피해를 최소화했다. 두 업체의 짬짜미는 가격을 올릴 때도 그대로 나타났다. 2008년부터 원재료 값·환율 급등 등을 내세워 최대 33%까지 가격을 올렸다. 가격 조정은 우선 일본 본사 고위직 합의를 거쳐 한국법인 직원들에게 지침이 전달됐다.
검찰 관계자는 “약식기소 아닌 정식재판에 넘겨 국제카르텔 사건에 대한 사법 처리의 선례를 남겼다”며 “기업활동의 국경이 없어진 상황에서 불공정행위에 대한 처벌은 국적에 상관없이 엄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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