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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화의 진수… 바람소리 마저 들리는듯

한국화가 문봉선 개인전 <br>16일까지 인사동 선화랑

소나무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만 권의 책을 읽고 만리를 여행해 인격을 수양하고 경험을 쌓는다는 이 문구는 문장가와 화가들에게 예로부터 강조돼 왔다.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일찍이 화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한국화가 문봉선(48)은 1988년 돌연 짐을 싸 길을 떠났다. "중국화는 중국사람의 눈으로 본 중국 자연이니, 내 나라 우리 땅의 풍경을 다룬 한국화를 그리고자 했지요. 매화는 광양과 순천 선암사가 좋고 대나무는 담양과 하동, 국화는 영종도가 좋습니다. 그렇게 '토종 사군자'를 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산수화가 눈에 들어왔고, 북한산을 그린 조선 회화가 참 드물다는 생각에 종이를 말아 배낭에 넣고 산으로 올라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산과 구름을 배치한 파격적인 구도, 비개는 장면이나 운무의 흐릿함, 과감한 생략법은 사생 현장에서 배운 것이었다. 북한산 뿐 아니라 설악산, 지리산도 돌았고 그 때 그린 '안개 낀 지리산'은 청와대 접견실에 걸려 있다. 섬진강은 발원지 마이산부터 강이 끝나는 광양만까지 3년을 다녀 22m 폭의 전도를 완성했다. 그런 문화백이 인사동 선화랑에서 2년 만에 개인전을 열고 있다. 대지를 그린 풍경화는 언뜻 서양의 색면추상을 떠올리게 한다. 짙게 간 먹을 넓은 붓으로 수백 번 덧칠해 습기와 안개를 그려냈다. 갈필도 아닌 것이 흉내낼 수 없는 그 만의 필법이다. "실경산수라 하여 보이는 것만 그리면 아직 덜 여문 것이지요. 바람과 소리, 습기와 안개같이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내 방법으로 그립니다. 소나무 하나일지라도 그것을 완성하는 건 땅의 풍토입니다. 둥치의 곡선미는 바람이, 가지의 무게감은 봄 눈이 만들어내는 것이거든요." 격조 높은 현대 수묵화 전시는 '동정지간(動靜之間)' 즉, '비어있는 풍경 혹은 차 있는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16일까지 계속된다. (02)734-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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