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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종의 경제 프리즘] 삼성, 절반의 성공학

태생적으로 재벌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좌파. 그 체제 정부 하에 재벌이 절대 경제력을 행사하는 기묘한 나라가 있다. 유럽의 강소국 스웨덴이다. 지난 1932년 이후 70여년 사회민주당이 통치, 세계에서 좌파 정당이 가장 오래 집권한 이 나라 발렌베리 그룹사들의 시가 총액은 스웨덴 주식 시장 전체의 50%에 육박한다. 발렌베리가 거느린 계열사들은 세계시장에서 이름이 쟁쟁한 통신회사 에릭슨, 자동차사 사브 등을 포함, 총 14개사다. 이들이 없다면 스웨덴 경제가 무너질 지 모를 이 그룹의 지배체제는 무려 5대째 발렌베리 가문에 의한 전형적인 가족 기업 형태다. 이들은 주당 의결권이 10~1000개인 이른바 ‘황금주’를 통해 낮은 지분율로 산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좌파 정권하에서 이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지난 38년 사민당 정권-발렌베리 그룹-노조간 대타협, 이른바 ‘잘트셰바덴 협약’ 덕분이다. 당시 발렌베리는 일자리 확대에 힘쓰며 최고 85%의 소득세를 내는 등 국민 경제에 대한 우선적 기여를 사민당과 약속했다. 정권은 정권대로 실용주의를 택했다. 70년 가까이 이 약속을 잘 지켜온 발렌베리에 대해 스웨덴 국민들은 ‘애정’으로 화답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이 나라를 다녀간 건 2003년 이맘때다.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 총회 참석차 유럽을 왔다가 주변국을 돌아본 단순 방문이란 그룹측 발표에도 당시 항간에는 이 회장이 성공적으로 세습 경영을 해 온 발렌베리 그룹을 직접 살피기 위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 그후 삼성경제연구소측은 연구원을 파견, 1년 여에 걸쳐 스웨덴 문화와 기업 지배구조 등을 연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스웨덴 방문 후 2년. 삼성이 실제 발렌베리의 지배구조를 참조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X 파일 사건으로 인해, 특히 지배구조와 관련해서 삼성은 유례없는 여론의 화살을 맞고 있다. 발렌베리 그룹이 자기 나라 국민들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는 상황과 맞대보면 글로벌 기업으로 출중한 경영 성적을 내며 한국 경제를 끌고 있는 삼성의 성공이 절반에 그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난다. ▦사회의 신뢰와 기업 발전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론을 정리한 사람은 미 존스 홉킨스대의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다. 그는 저서 ‘트러스트(Trust)’에서 사회 구성원 사이 형성된 신뢰가 경제적 번영을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기업의 발전에 적용할 경우 신뢰도가 높은 사회에선 가족 기업이 근대적 대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신뢰관계가 가족 등 혈연의 테두리에 한정된다면 가족 기업이 대기업으로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구성원간 신뢰도가 낮은 ‘저 신뢰 사회’로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을 꼽았다. 그 중 특히 중국인들의 경우 가족 내 결속력은 매우 강하지만 대문을 나서면 달라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래서 가족 경영과 세습 경영이 화교 기업의 특징이라고 했다. 후쿠야먀 교수의 주장 대로라면 한국 가족 기업들의 경우 지속적으로 커 나가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이는 삼성 등 한국 재벌들이 발렌베리의 지배 구조 시스템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기업이 어떻게 신뢰와 존경을 받는 가에 보다 더 신경 써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강압적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려는 삼성과 노조와의 합리적 관계로 그들과 공생을 꾀해온 발렌베리 그룹의 차이는 그 요인들 중 한가지 사례다. 사회에 대한 공헌의 정도도 마찬가지 문제다. 일면 삼성보다도 더 심한 족벌 경영의 양태를 띈 발렌베리 그룹에 대해 국민들의 ‘안티(anti)’ 정서가 거의 없는 이유-지금 혼돈의 한 가운데 서 있는 한국의 재벌들이 가족 경영을 모범적으로 해 온 선진 기업들로부터 배울 점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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