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웠다.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를 보면서 금융업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고개가 숙여졌다. 더욱 무거운 책임감도 느끼게 됐다. 이번 사태에서 고객의 땀과 피가 묻어있는 소중한 자산에 대해 성실한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저버린 행위만큼은 그 책임과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은행불사의 관념이 깨지기 시작했다.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금융기관이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는 모습도 생생히 지켜봤다. 이쯤 되니 정말 원론적인 질문 하나를 해보게 된다. '과연 금융기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금융산업은 신용과 통화를 창출하는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해왔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명은 고객 자산을 안전하게 지키고 키우는 것이다. 금융시스템의 붕괴는 곧 사회의 신뢰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뜻하기에 그 책임은 더욱 막중하다 할 수 있다.
생명보험산업은 은행과 달리 그 중요성이 덜 부각돼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성장과 변화의 바람이 무섭다. 지난 2011년 말 현재 생명보험사의 총 자산규모는 442조원. 2010년도 연간 총 수입보험료는 83조원이며 연간 지급된 보험금의 규모는 53조원에 이른다. 국민 1인당 4.4건의 보험에 가입해 연간 498만원의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 지난 60여년간 이뤄온 실로 놀라운 결과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생명보험사에 대한 고객의 신뢰는 더 향상돼야 한다. 고객이 생명보험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해약 환급금과 사업비 관련된 불만, 이해하기 어려운 상품내용, 보험설계사의 관리 소홀, 보험금 지급시 불편한 절차 및 지급기준에 대한 갈등 때문이다.
고객은 자신의 보험료 중에서 얼마가 사업비로 사용되는지 알 권리가 있으며, 상품내용에 대해 정확하고 충분한 설명을 주기적으로 듣고 확인할 권리와 자신의 자산이 현재 어떠한 상태인지 알 권리가 있다.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유러피안 드림'에서 "시민사회는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더 큰 공동사회의 선을 극대화해 자신의 복지가 증진한다는 개념을 기초로 하며, 시민사회는 점점 더 상업적으로 규정돼 가는 세계에 대한 교정수단이다"라고 했다. 이처럼 앞으로의 사회는 신뢰와 공동의 선을 더욱 중요시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민들로부터 질타를 받기 전에 미리 변화할 필요가 있다.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라는 보험의 격언을 떠올려 본다. 보험산업이 신뢰의 상징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현재 국내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모든 생명보험사는 이와 같은 고객의 권리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한다. 이는 참으로 기분 좋은 변화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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