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축통화 달러화의 약세가 심상치 않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 침체가 끝날 조짐을 보이면서 달러화의 평가절하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달러화 약세는 근본적으로는 과잉 유동성에 따른 것이지만, 글로벌 경제 위기 국면에서 감춰졌던 기축통화 달러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관측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국제외환 시장에서 달러화는 유로당 1.42달러대에 거래됐다. 올 2월 달러화가 유로당 1.25달러대에 거래됐음을 감안하면 근 14%가 평가절하된 셈이다. 달러화의 약세 기조는 엔화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말 엔ㆍ달러 환율은 달러당 100엔을 넘었지만 현재는 달러당 92엔대에 그친다. 최근 민주당 정권이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엔화 절상 속도가 가팔라진 측면이 있긴 하지만 달러화의 하향 추세는 지난 2ㆍ4분기부터 추세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달러 약세가 글로벌 경제가 최악의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자 '달러화 바로 보기'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 초 저금리와 국채 발행 등으로 과도하게 풀린 달러화의 약세는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시장에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간 주택 거품 붕괴로 초래된 금융 위기를 넘기 위해 0%대의 초 저금리 통화정책과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왔다. 한마디로 경제를 살릴 목적으로 달러화 공급을 무차별적으로 늘려왔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전이되면서 일시적으로 달러화는 강세를 보이는 기현상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 경제와 함께 세계 경제가 붕괴될 수 있는 공포 속에서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달러화가 낫다'는 공감대가 시장에서 형성되면서 달러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변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일단락될 조짐을 보이자, 외환 시장에서 부풀려진 달러화의 가치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 특히 글로벌 증시도 상승으로 방향을 잡아 가면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달러화의 투자 메리트도 반감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이날 이탈리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유럽과 일본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자국 통화의 급격한 절상을 원하지 않고 있음을 감안하면 지금 당장 달러화 가치가 추락할 가능성은 없다"면서도 "미국 정부가 무역적자를 통제하지 못하고 부채를 줄이지 못하면 달러화의 추가적인 하락은 피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시장에서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할 것으로 믿는 순간 달러 가치는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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