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빼고 다 바꿨다는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 8일 경희궁 숭정전에서 선보인 뮤지컬 ‘대장금’은 개작이 아닌 신작에 가까웠다. 대장금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내용을 빼곤 모조리 바뀌었다. 살아 남은 부분은 어선경연대회, 민정호와의 애틋한 사랑 정도다. 달라진 ‘대장금’의 특징은 선택과 집중에 따른 빠른 전개. 모든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최대한 많은 사건을 끼어 넣었던 초연 때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대사는 확 줄고 노래로 공연이 흘러간다. 원작 드라마의 속박에서 벗어나 비로소 뮤지컬의 묘미를 살린 점이 두드러진다. 세부적인 내용은 휙휙 넘긴다. 속도감은 느끼되 무성의하지는 않았다. 논리 비약은 찾아 볼 수 없었고 이해하는 데도 무리가 없었다. 안무가 안애순의 투입도 긍정적이다. 극중 개혁을 꿈꾸다 숙청당한 조광조를 위한 ‘씻김’은 내용과 딱 들어맞았다. 서양 뮤지컬 흉내내기 일색이었던 우리 뮤지컬에 방향성을 제시하기도 하는 듯하다. 다만 전통 무용이 가미된 초ㆍ후반부와 정통 뮤지컬에 가까운 춤을 선보인 중반부가 이질적이며 불안정한 간극을 남겨 아쉬움이 남는다. 여성이라는 굴레를 벗고 휴먼드라마를 이룬 대장금의 삶은 개혁을 꿈꾸는 조광조의 이상에 투영되며 극중 주제로 형상화된다. 초연에 비하면 주제가 세련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표현됐다. 노래와 전개가 빨라지며 의상과 분장도 현대적으로 변했다. 짧은 머리의 중종, 민소매 옷을 입은 대장금 등 고전을 복원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것으로 보인다. 야외 공연이지만 음향 상태는 훌륭했고 노랫말은 또렷하게 들렸다. 리사(장금), 고영빈(민정호), 조정석(조광조), 한지상(중종) 등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도 무난했다. 30일까지 (02)738-8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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