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평가에서 원전납품 비리로 얼룩진 한국수력원자력은 예상대로 기관 및 기관장 평가에서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역시 기관장 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면치 못했다. 대한석탄공사와 광물자원공사 같은 일부 에너지 공기업도 방만경영으로 기관장 해임건의 대상에 올랐다. 공공기관 경영부실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되돌아온다는 점에서 엄중 대처해야 한다. 내부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전문성과 자질이 부족한 것으로 판명된 기관장은 임기와 상관없이 퇴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평가제도의 적정성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이번 결과가 낙하산 인사의 빌미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중간수준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면 전 정부가 기용한 인사일지라도 임기를 보장하는 게 옳다.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정치권과 관가 쪽에서 내정설이 나돌고 공공기관 직원들이 자신의 수장을 음해하는 투서까지 하는 것은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그러지 않아도 새 정부 들어 인사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 마당에 관료사회가 산하기관장 자리를 나눠 먹기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국민에게 면목없는 일이다. 최근 금융권 수장은 하나같이 모피아 출신들로 채워졌고 다른 부처 산하기관장 역시 관료 차지였다. 관료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관료 일색인 데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청와대가 뒤늦게나마 공공기관장 인선에 제동을 건 것은 잘한 일이다.
주요 공공기관장 가운데 이른바 MB맨들은 이제 거의 물러났다. 그렇다면 국정철학 공유가 인사원칙이라며 퇴진 압력을 가하는 부처의 행태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이번 경영평가 결과를 인사적체 해소용 내지 전관예우 차원에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할 생각일랑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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