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집행위원회는 30일(현지시간) 스페인 은행들의 자본을 재확충하기 위해 유로안정화기구(ESM)을 통한 자금 지원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EU는 또 스페인의 재정적자 감축 시한을 1년 연장해주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EU 집행위는 이날 발표한 27개 회원국에 대한 경제정책 제언 보고서를 통해 “은행과 국가 채무간 연결고리를 잘라내기 위해 ESM을 통해 (은행들의) 직접적인 자본재확충을 강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ESM은 재정위기에 처한 EU 회원국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약 5,000억유로 규모의 구제금융기금이다. EU는 그동안 이 기금을 스페인 은행을 구제하는데 쓸 계획이 없다고 밝혀왔지만 최근 스페인 은행권의 부실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자 입장을 선회했다.
스페인의 재정적자 감축 시한을 2013년에서 2014년으로 1년 연장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EU는 스페인을 포함한 27개 회원국에 대해 2013년까지 재정적자 규모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하로 낮출 것을 요구해 왔다.
EU 집행위는 유럽 각국의 부실 은행들을 통합해 구제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로이터는 29일 EU 집행위가 ‘유럽 은행 통합 구제안’을 이미 마련했으며 이를 다음달 6일 공식적으로 회원국에 제안할 예정이라고 구제안 초안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번 구제안의 핵심은 유럽 각국의 은행 청산기금을 한데 묶어 공동 운용하는 것이다. 구제안이 실현되면 유럽 금융권이 기존의 통화동맹을 넘어 ‘금융동맹’으로 나아가는 중대한 첫걸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로이터는 평가했다. 구제안은 또한 각국 은행 예금의 1%를 떼어내 위기 대응 자금을 조성하는 한편 은행 부실을 감독할 수 있는 별도 기관을 설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구제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EU 27개국 모두가 찬성 의견을 내야 하는데 돈줄을 쥔 독일과 영국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아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EU가 이처럼 적극적으로 스페인 구하기에 나선 것은 그리스의 유로존 이탈에 이어 스페인 마저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서다. 스페인은 10년물 국채금리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마지노선인 7%를 위협하고 있는데다 독일 국채와의 금리 격차(스프레드)가 500bp(1bp=0.01%) 이상 벌어져 자국 은행 구제에 필요한 자금마저 확보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실제로 스페인 정부는 지난 26일 자국 3위 은행 방키아에 190억유로(28조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공적자금을 투입한다고 발표했으나 막상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 이에 따라 스페인은 방키아에 현금 대신 국채를 지급하고 이를 담보로 방키아가 유럽중앙은행(ECB)에서 돈을 빌려 오는 계획을 추진했지만 ECB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스페인 경제 상황도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30일 EU는 3월 현재 24.1%인 스페인 실업률이 내년에는 25.1%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스페인 경제성장률도 올해 -1.8%, 내년에는 -0.3%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FT는 이와 관련해 그리스나 아일랜드ㆍ포르투갈 등의 사례를 보면 해당국 국채와 독일 10년물 국채의 스프레드가 500bp 이상으로 벌어진 뒤 모두 한 달여 안에 예외 없이 구제금융을 신청했다며 스페인도 이 같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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