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손수 운전하며 반포대로를 달린다. 라디오에서 올림픽대로가 소통이 원활하다는 교통정보가 흘러나온다. 막힘없이 가겠구나 생각하는데 문득 앞서 가는 자동차가 깜빡이를 켜고 들어온다. 살짝 브레이크를 밟으니 내 앞을 지나 좌회전 차선으로 들어선다. 생각해보니 올림픽대로 뿐만 아니라 앞차와 나도 소통이 잘됐던 것 같다. 길을 내줘도 기분이 괜찮았다. 아무런 의사표시 없이 끼어드는 차량을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
요즘 소통이 화두다. 달리 새로울 것도 없는 말 같지만 다들 알 만한 기업과 사람들이 여러모로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차량의 소통이야 각자 정해진 룰을 지키면 좋아지는 교통의 문제이지만 사람의 소통은 그야말로 의사와 인식의 소통이니 만큼 어렵고도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필요한 것이기 때문일 게다.
보통 소통이라 하면 윗사람과 아랫사람 간의 불통을 떠올리게 된다. 아마도 우리 사회의 위계질서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막힘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최고경영자(CEO)들은 소통을 위해 아랫사람을 만나고 현장조직을 찾아 직접 의견을 살피고는 한다. 그런데 소통은 이 같은 방식에 머무를 일은 아니다.
지난 2002년 월드컵 축구 당시 아나운서의 말이 생각난다. 게임이 잘 안 풀려 우리 팀이 고전하고 있을 무렵 아나운서는 어려울 때일수록 대화가 필요하다며 선수들끼리 말을 많이 할 것을 주문했다. 감독과 선수만의 소통이 아닌 선수들 간의 소통과 화합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1인 미디어의 시대, 세대를 불문하고 나름의 소통을 위해 메신저를 하고 트윗을 하고 친구의 담벼락에 글을 남기려 스마트폰을 비비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이를 두고 요즘 시대는 소통의 장이 넓어졌다 하는데 세대 간 개방성이 확대됐다고 하는 오늘날 아이로니컬하게도 소통이 강조되는 이유는 왜일까.
소통에는 관심과 눈높이가 관건이다. 소통의 장에서 개인적 사유(思惟)를 트윗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막힘'에 대해 관심을 갖고 눈높이를 맞출 때에 비로소 소통이 있을 수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에 대한 관심과 눈맞춤으로 형통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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