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현대자동차의 쏘나타와 기아자동차의 K5, 한국GM의 말리부 등 중형세단은 각 완성차 업체들을 대표하는 ‘대표 모델’이었다. 하지만 완성차업체들의 ‘대표얼굴’은 레저세대의 등장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21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4월까지 국내에서 팔린 자동차 10대 가운데 4대는 SUV와 미니밴 등 RV(레저용 차량·Recreational Vehicle)였다. 말 그대로 RV 전성시대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SUV 판매 비중은 2010년만 해도 불과 18%에 불과했다. 이후 성장을 거듭해 올 들어 4월까지는 비중은 32%까지 늘었고, 여기에 미니밴 등을 포함한 RV 차량의 판매비중은 39.8%에 달한다.
반면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주력 판매 차급으로 군림해온 중형·준중형 세단의 판매 비중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들 차급의 판매 비중은 2010년 51%에 달했다. 하지만 2011년 42%에 이어 2012년 39%로 떨어진 후 내리막길을 걸어 2013년 35%, 2014년 33%를 기록하더니 올해 1∼4월에는 29%로, 30% 아래로까지 하락했다.
쏘렌토와 카니발의 판매호조에 웃음짓고 있는 기아자동차는 아이러니하게도 오는 7월 신형K5 출시를 앞두고, RV열풍을 걱정하는 모습이다. 세단에서 RV로 중심이동을 하고 있는 국내 자동차 시장의 추세가 신형 ‘K5’ 판매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고 있는 것.
이용민 기아차 국내상품팀장(이사)는 지난 4월 서울모터쇼에서 신형 K5를 첫 공개하며 “최근 라이프 스타일 변화에 따라 SUV 판매가 늘어난 반면 중형 세단의 수요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며 “다시 중형세단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요소들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신형 K5를 2가지의 외관 디자인과 7개 파워트레인 모델로 출시키로 했는데, 동급경쟁 모델이 아닌 RV와의 판매경쟁에 더 신경을 썼다는 설명이다.
한국GM도 말리부와 크루즈를 제치고 올란도가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올란도는 SUV와 승용차, 미니밴의 장점을 두루 갖춘 차량으로, 매년 꾸준히 판매가 늘어 한국GM의 스테디셀러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첫 출시된 2011년 1만7,000대 가량이던 연간 판매량은 지난해 1만9,000대를 넘어섰다.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판매량도 5,606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5,490대보다 2.1% 늘며 완만하지만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지난해 판매량을 고려하면 올해 첫 연간 판매 2만대 돌파도 점쳐진다. 지난달에는 한국GM 전 차종이 전월대비 판매량 감소를 보인 가운데 올란도와 소형SUV 트랙스는 각각 1.5%, 11.5% 판매가 늘었다.
르노삼성의 지난달 베스트셀링 모델도 소형SUV인 QM3의 차지였다. QM3는 지난달 판매 대수는 2,628대로, 르노삼성의 대표 모델인 SM5(2,053대)와 SM3(1,430대)보다 많다.
최근 르노삼성은 신차가 아님에도 QM3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워 ‘대표 모델’ 대접을 해주는 모습이다. 이달 들어 매주 주말마다 서울 시내 유동 인구가 많은 도심 등지에서 ‘QM3 게릴라 팬미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페이스북과 삼성역 지하철에 마련된 DMT(Digital Media Tunnel) 등 온·오프라인에 QM3 홍보영상을 게시했다.
업계에서는 RV차량의 판매급증 원인으로 국내 레저문화 확산과 기술 발달로 인해 RV의 단점이었던 승차감이 개선된 점을 꼽는다. 아울러 자동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이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가족과 함께 공유하는 ‘공간’으로 확대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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