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개혁이 하반기 정국의 뇌관으로 부각되고 있다. 각자 셈법에 몰두하고 있는 여야는 개혁 방법론에 뚜렷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고 노사정 대화를 재개하려는 정부와 여당의 개혁안에 노동계는 노동자 현실을 무시한 개악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노동 시장 유연성 확보, 임금피크제 등 개혁목표 의제만 보더라도 폭발력은 어마어마하다. 당정과 노동계가 타협 없이 마주 달리는 기관차처럼 충돌한다면 총파업, 물리적 충돌, 생산 차질에 이은 0%대 경제 성장 고착화로 귀결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는 방법이다. 정부가 지난 4월 노사정위원회 결렬을 초래한 한국노총을 협상 테이블에 복귀시키기 위해 어떤 물밑 접촉도 마다해서는 안 될 이유다. 만남 후 실질적인 주고받기를 위해 상호 공감이 뒤따라야 한다. 노동계 입장에서 고용 유연화는 건드려서는 안 될 폭탄이다. 흔히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일본처럼 종신(장기) 고용 관행이 있는 것처럼 믿어왔지만 학계에서 지적하듯이 당시의 고용 안정은 고도 성장의 부산물이었을 뿐 제도적으로 뒷받침된 고용 시스템은 아니었다. 고용 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됐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근로자가 해고 불안감에서 완전히 벗어난 적은 없었던 셈이다. 실제 정리해고는 쉽지 않은 반면 산업계 전반에서 희망·명예퇴직이 널리 이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해고 지침처럼 강력한 노동계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사안을 정부는 청년 고용절벽을 해소할 최선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차선이 더 나을 때가 있는 법이다.
우리 정부가 성공모델로 꼽는 2003년 독일의 이른바 '하르츠개혁'도 따지고 보면 차선에 가깝다. 해고 문제를 직접 건드리지 않은 대신 지나치게 많은 실업수당을 대폭 줄이고 노동시간 탄력 조정, 임시직 일자리 늘리기로 청년 실업자를 유인하는 정책으로 효과를 봤다. 당시 공장의 해외 이전을 막고 독일 내 일자리를 지키자는 노사 간의 자발적 타협도 이뤄졌다. 실제로 2004년 다임러크라이슬러사와 독일 벤츠 공장 근로자 간에는 8년간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장기적으로 임금 삭감을 합의했었다.
고용 유연성을 맞짱 뜨기 식으로 밀어붙인다면 임금피크제처럼 노동계의 수용의사가 높은 유용한 패들은 테이블에 올라올 수 없다. 대기업 정규직과 나머지 근로자·비정규직 간 격차로 나타나는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라고 노사 등을 떠밀 수도 없다. 외환위기 때와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이 없는 노사가 여권과 정부의 단독 질주에 눈치만 볼 뿐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양털은 계속 얻을 수 있지만 양 가죽은 단 한 번밖에 얻지 못한다'는 협상학에서 인용되는 아일랜드 격언이 있다. 상대의 가죽을 벗겨 내는 순간 거래는 지속될 수 없으며 개혁목표에 한 치도 다가설 수 없게 된다.
박현욱 여론독자부 차장 hw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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