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토추상사가 태국 최대 재벌회사인 차른뽁판(CP)그룹과 공동으로 중국 거대 국유기업인 중국중신그룹(CITIC)에 1조2,040억엔(약 11조6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꺾인 중국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외자 유입에 속도를 내는 시진핑 중국 주석의 의도와 맞닿은 이번 투자 성사로 중일관계 악화 때문에 지난 수년간 크게 위축됐던 일본의 대중 투자에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3위 종합상사인 이토추상사와 태국 CP그룹이 절반씩 출자하는 특정목적회사를 통해 CITIC 산하기업인 중국중신 지분 20.6%를 매입하고 3사가 식품·부동산· 에너지· 제조·금융 등의 분야에서 협업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중신은 홍콩증시에 상장된 CITIC의 지주회사로 은행·부동산·자원개발 등 총 20개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절반을 출자하는 이토추상사의 투자액은 약 6,000억엔으로 일본 기업의 대중 투자액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중국 상무성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대중 직접투자는 지난 2012년 일본 정부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로 양국 관계가 악화된 후 2년 연속 급감해왔다.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38.8% 줄어든 43억3,000만달러(약 5,040억엔) 규모로 비교 가능한 통계가 집계된 1985년 이후 최대 낙폭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이토추상사의 대중 투자액은 지난해 일본의 연간 대중 직접투자 총액을 크게 웃도는 셈이다.
신문은 이토추상사가 시진핑 지도부와 긴밀한 관계인 CITIC에 출자함으로써 앞으로 중국 내 자원개발이나 물류망 정비, 부동산 개발 등 지금까지 엄격한 외자규제 때문에 진출하기 어려웠던 사업 분야에도 발을 뻗기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특히 이번 출자계획을 주도한 CP그룹의 타닌 찌얀와논 회장은 시진핑 지도부와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화교 기업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CITIC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계열사 사업이 중국에 국한된 한계를 이번 출자를 계기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토추와 CP의 해외 사업망을 통해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 해외 식량유통 및 자원개발 시장 개척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설명이다.
무엇보다 CITIC가 대규모 외자도입을 결정한 데는 해외자본을 활용해 경제 활성화를 노리는 시진핑 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CITIC를 외자유치 본보기 사례로 만들어 국유기업 경영 효율화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려는 의중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얼어붙었던 중일관계가 풀리기 시작한 점도 이번 대규모 투자의 배경으로 작용했다. 신문은 이번 구상이 중일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물밑논의가 본격화한 지난해 7월 급부상했으며 정상회담이 성사된 11월 이후 CITIC가 자본도입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