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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핵심 참모인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의 곽승준 위원장이 지난 4월26일 한 정책토론회에서 "거대 권력이 된 대기업을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해 견제해야 한다"고 밝힌 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관치∙연금사회주의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주주가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므로 이참에 국민연금이 정부∙정치권의 입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법적∙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전문가 의견을 들어본다. ● 김우찬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전문성·대표성 조화 묘안 필요
기금운용위 등서 논의 주도를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 주주가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데도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강화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은 박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논의를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대기업 때리기를 통한 선거 득표 전략이라는 정치적 해석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의도가 불순한 만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는 결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평상시에는 재벌 눈치를 보느라 공개적으로 논의조차 못하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비로소 쟁점으로 부각됐는데 진정성을 의심받아 생산적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의를 촉발시킨 주체의 진정성을 따지는 것에 함몰돼 수년 만에 찾아온 소중한 기회를 놓칠까 우려된다. 기회를 살리기 위해 이제는 논의의 주체를 바꿔볼 단계가 됐다.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 국회, 그리고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나설 차례가 된 것이다. 우선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0년 법안심사소위에서 합의한 바에 따라 가입자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국민연금의 기금운용체계 개혁안을 다시 내놓아야 한다. 정부나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할 수 없는 기금운용의 지배구조를 갖춰야 주주권 행사의 폐단을 막는 데 용이하기 때문이다. 2008년 정부는 기금운용위의 상설화, 전문성 제고, 정부위원 배제, 기금운용공사 독립 등을 골자로 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가입자단체들의 대표성을 크게 약화시킨 것이 문제돼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의의 진전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전문성과 대표성을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하루빨리 대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국회가 나서야 한다. 소관 상임위원회가 대안을 만들 수도 있다.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은 일정 수준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는데 협상과 타협에 있어서 가장 비교우위가 높은 기관이 바로 국회이기 때문이다. 2008년 제출 법안과 관련해서는 국회가 단 한 번도 공청회를 연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한다면 기금운용위가 나설 수도 있다. 국민연금의 지배구조 개혁이 주주권 행사의 폐단을 막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만 필수 사항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 수립과 구체적인 행사내역 공시를 통해 폐단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주주권 행사 정책과 그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국민들로부터 직접 감시 받는 체제를 갖추게 된다. 기금운용위는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수립하는 데 매우 적합한 기관이다. 20명의 위원들 중 12명이 가입자단체 대표들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모여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표도 참석하는 만큼 재계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구조를 이미 갖추고 있다. 국민연금의 현행 의결권 행사지침도 이런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2005년 만들어졌다. 이제는 주주제안, 이사 및 감사후보 추천, 위임장 대결, 증권관련 소송 등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 차례다. 이와 관련,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확대∙개편해 다른 소수주주권에 대해서도 자문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의결권 행사 내역의 사전공시와 기업지배구조펀드에의 위탁운용 확대 등은 새로운 가이드라인 수립과 위원회 개편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너무 서두르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다. 모처럼 온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되겠지만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필요가 있다. 또 선거 득표 전략이라는 오해의 소지를 받지 않기 위해 내년 3월 주총이 아니라 내후년 주총을 겨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 김현종 한국경제硏 연구위원
공공성·정치성향 강요 말아야
관치 사전차단 장치 마련부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미래기획위원장의 발언과 한나라당 지도부의 조건부 수용 입장 표명 이후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러한 발언이나 정치적 행보는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독립성이 왜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사례가 된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의 의결권 관련 결정을 성실하게 수행해왔던 전문가들이나 개선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하던 연구자들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향후 관련 정부부처나 국민연금공단으로서는 영향력 있는 인사의 이러한 발언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여러모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정 지분을 보유한 기관투자가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감시비용으로 기업경영을 들여다 볼 유인이 있다는 인식에서 기업지배구조상 견제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 달리 여러 연구결과들은 외부 기관투자자들이 전체 주주들을 위한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고유의 목적을 위해 기업경영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외부투자자가 정치적 성향을 가졌거나 정부의 영향력을 받는 경우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한 행동보다는 투자기관이 갖고 있는 고유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의결권 행사에 적극적인 캘퍼스(CalPERS∙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와 같은 연기금이 기업 성과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연구결과는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우려는 우리의 국민연금에도 해당될 수 있다. 만일 국민연금이 수익성 극대화가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해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자본시장 전체 후생에 도움이 될지 의문시된다. 특히 실적이 우수한 국내 기업의 주식을 다량 보유한 채 의결권 행사 목적을 수익성이 아닌 정치적 동기에 두고 있다면 말이다. 전문가들이 강조해온 바와 같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의 독립에 관한 것이다. 과거 정부기관에서는 공기업이었으나 민영화된 대규모 기업들이 공공성 목적을 위한 사업에 소홀하다면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통한 지배력을 종종 언급한 바 있었다. 또한 민영화된 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M&A) 위기에 직면할 경우 주요 기간산업 보호를 위해 국민연금을 통해 경영권 안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던 적도 있다. 최근에는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 수행 여부를 평가해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행사하자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주주 입장에서는 자신이 주식을 소유한 기업이 공공적 사업을 수행하거나 정부가 경영권을 인위적으로 보호하려 하거나 혹은 사회적 책임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주식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우려한다. 투자자들의 평가는 정부의 정책방향과 크게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정보기술(IT) 기업이 경영전략을 결정하거나 철강 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려고 노력하는 데 대한 평가는 자본시장에 의해 이뤄져야 하는 것이지 정부가 관여할 대상이 아니다. 정부 주도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이뤄질 경우 비효율적인 결정을 유도할 우려가 있다. 정부는 국민연금을 통해 수익성이 아닌 공공성이나 정치성향을 기업에 강요하지 말아야 하고 관치가 통하지 않을 장치를 마련하는 논의를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왜곡하지 않는 동시에 당연납부 대상인 국민연금으로부터 탈퇴하는 것이 불가능한 국민들의 우려를 덜어주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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