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초 '운하의 도시'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네치아. 어느 날 야심한 시각에 한 남자가 병든 아내를 안고 운하를 향해 급하게 '탁시 탁시!'라고 소리쳤다. 탁시는 급하다는 뜻의 베네치아 방언. 지나가던 곤돌라 한 척이 다가 와 병든 아내를 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구했다. 전해져 오는 택시의 기원이다.
자동차 택시가 등장한 것은 1896년. 미국 뉴욕의 아메리칸전기자동차가 200여대를 제작해 마차 대신 운행했다. 기름 냄새가 나는 휘발유 택시가 처음 운행된 곳은 벤츠 본사가 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시. 1898년 크라이너라는 사람이 휘발유차 발명가 고틀리프 다임러로부터 차를 사서 손님을 태웠다고 한다. 택시 미터기가 첫선을 보인 게 이때다.
우리나라에서 택시영업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19년이다. 일본인 노무라가 서울 남창동에서 미국산 닷지차 두 대로 경성택시를 시작했다. 시간당 대절료가 6원으로 당시 쌀 한 가마니 값이었다니 서민들은 택시 타기가 언감생심이었지 싶다.
현재 세계에서 택시 전용으로 유명한 모델은 1930·1950년대 형의 영국제 오스틴과 미국제 책커, 그리고 독일 벤츠. 이중 벤츠 택시를 오는 10월부터 서울에서 자주 타볼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시가 모범택시보다 '급'이 높은 고급택시를 운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배기량 2,800cc 이상 리무진급 차량에 비행기승무원 수준의 서비스 마인드를 갖춘 기사가 운전한다고 한다. 기본요금은 8,000원선. 벤츠 등 고급 수입차를 택시로 이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반갑지만 기분이 개운치 않다.
시가 밝힌 고급택시 도입 취지는 서비스 질 향상. 지난 1992년 12월 모범택시를 내놓았을 때와 판박이다. 택시 종류를 늘린다고 서비스가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됐다. 배기량이 부족해서, 프리미엄 택시가 없어서 시민들이 불편해하는 게 아니다. 택시 정책이 공급 과잉의 고민은 외면한 채 자꾸 샛길로만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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