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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바퀴벌레와의 동거

요즘은 상당히 줄어든 것 같은데 한때 우리 주변에서는 내남 없이 바퀴벌레에 진저리를 친 적이 있다. 이놈들이 얼마나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 바퀴벌레 한 마리만 방치해놓아도 어느새 한 무더기의 바퀴벌레들이 집안 구석구석을 차지하고는 했다. 물속에 빠져도 쉽사리 익사하지 않아 잠시 한눈을 팔면 어느새 바둥거리며 물 밖으로 나오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혹시라도 이삿짐 속에 묻어 옮겨질까 싶어 온갖 깔끔을 떨어보지만 새로 들어가는 집에는 여지없이 토종(?) 바퀴벌레가 집주인보다 먼저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사람들 손에 닿지 않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에는 항상 바퀴벌레 한두 마리쯤 웅크리고 있기 마련이었다. 이놈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음식물 부스러기가 넘쳐나는 부엌 싱크대 주변. 싱크대를 들어내면 그 밑에는 ‘바퀴벌레 천국’이 건설돼 난리법석을 부리는 것을 모를 리 없지만 나를 포함한 주변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러려니 하며 살아왔다. 일종의 바퀴벌레와의 동거인 셈이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삼성에 대한 각종 의혹과 치부가 김용철 변호사의 순차적인 폭로전으로 세상에 마구 쏟아져나오고 있다. 사실 기업들의 활동 가운데는 일반 상식선의 행동과 결정만 있는 것은 아니라 비밀스러운 움직임도 함께 흐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한건의 주문을 얻어내면 기업의 운명이 바뀌는 초대형 거래들이 형성되는 곳에는 어김없이 겉으로 드러났거나, 속으로 감춰놓았던 기업의 모든 역량이 투입된 사례를 발견하기 마련이다. 이런 기업활동의 뼈대와 근육들 사이사이에는 때론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감탄스러운 판단과 감각, 혜안들이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로서는 감내하지 못할 정도로 지저분하거나 유치한 행동과 몰상식도 때론 버젓이 자리 잡고는 한다. 비즈니스활동이라는 멋진 표현 속에는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 자리 잡은 99%의 ‘상식적인 행동’과 법과 원칙의 경계선에서 줄타기하는 1%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바퀴벌레와의 동거는 서로 간에 암묵적인 합의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뤄져 있다. 톱니바퀴처럼 짜여져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바퀴벌레와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며 사생결단의 심경으로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느라 날밤을 새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저 죽을 줄 모르고 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대에 거실 바닥을 어슬렁거리는 바퀴벌레도 많지 않다. 마치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한 훨씬 더 중요한 일상에 밀려 상대를 무시하면서 지낸다고 하면 얼추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바퀴벌레가 눈에 띄지 않을 때야 ‘동거 중’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면서 살 수 있겠지만 눈에 띄는 순간부터는 바퀴벌레를 그냥 놓아둘 수 없는 일이다.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의 한 구석에도 가정집 싱크대 밑에서처럼 ‘사회적 바퀴벌레’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놈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한 동거 중이라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 못할 수 있지만 사람들 눈에 띄는 순간 여지없이 ‘박멸’의 대상일 뿐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특검을 통해 바퀴벌레가 근거지를 마련해 군집하고 있음이 드러난다면 말 그대로 ‘발본색원’이 불가피하다. 한 가지 되돌아볼 일은 최근 가정집에서 바퀴벌레가 급속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이러저런 예방조치가 이뤄지고 있는데다 바퀴벌레가 살기에는 상당히 척박한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즈니스활동에서도 ‘사회적 바퀴벌레’가 살아남기 힘겨운 척박한 환경을 조성해놓았다면 지금 같은 난리법석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특히 ‘힘과 권한’을 가진 자들은 집안 곳곳에 부주의하게 ‘먹을거리’를 떨궈놓으면 안 된다는 점을 항상 마음깊이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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