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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1월 23일] 농축 우라늄 카드 빼든 北

결국 북한이 농축우라늄 카드를 꺼내 들었다. 미국의 핵과학자에게 초현대식의 원심분리기를 직접 보여주고 실물로 공개한 것이다. 당장은 경수로 발전용 핵연료를 위해 저농축 우라늄을 만든다는 명분이지만 우라늄 핵폭탄용 고농축 우라늄 제조는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폐연료봉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추출 방식에 비해 우라늄 핵폭탄은 제조가 간편하고 은닉이 용이하며 핵실험도 필요하지 않은 훨씬 진전된 핵무기 기술이다. 영변 원자로 가동 및 재처리로 플루토늄 핵무기를 확보한 데 이어 이제 원심분리기를 통한 우라늄 핵무기 보유까지 한 발짝 다가서게 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번 원심분리기 실물 공개는 북이 전략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북은 최근 대남 유화조치를 통해 남북관계를 일정하게 관리함으로써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국면전환을 시도했다. 6자회담 재개의 조건으로 미국이 남북관계 진전의 가시화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승호 송환과 이산가족 상봉 및 적십자 회담 등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국면 분리와 6자회담 재개에 동의하지 않았고 대북 제재 지속과 선(先)비핵화 조치만을 북에 반복 요구했다. 결국 북한은 한국과 미국이 지금 국면에서 북핵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고 급기야 북핵문제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농축우라늄 이슈를 본격 제기한 것이다. 농축우라늄 문제는 사실 북핵문제에서 악몽과도 같다. 지난 2002년 당시 제임스 켈리 차관보의 방북에서 고농축 우라늄 이슈가 제기되면서 순식간에 제네바 합의체제는 무력화됐고 이른바 2차 북핵위기가 전면화했다. 3차 위기를 초래한 농축우라늄 문제가 이번에 다시 전면화함으로써 이제 북핵문제는 제3차 위기로 불릴 만큼 또 한번의 결정적 국면을 맞게 됐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번 사태가 충분히 예고됐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해 4월 자체의 핵동력공업을 위해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공언했고 6월에는 핵연료 보장을 위한 우라늄 농축기술이 성과적으로 진행됐다고 선언한 바 있다. 북이 수 차례에 걸쳐 공언한 내용이었지만 미국과 한국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미국과 한국은 자신의 희망적 사고와 '북한악마' 이미지에 사로잡혀 보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만을 자의적으로 선택했다. 2005년 2.10 핵보유 선언 당시에도 조지 부시 행정부는 북이 직접 핵실험까지 갈 것을 주의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북미 간 진정성 있는 양자협상이 지지부진할 경우 결국은 핵실험과 핵보유로 갈 것임을 북은 애초부터 주장해왔다. 그러나 2009년 장거리로켓 발사 공언 당시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제재위협만을 반복하면서 북의 행동을 막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등장 이후 김정일 위원장은 지지부진했던 미국과의 핵협상을 대담한 판으로 바꿔 짜기 위해 평화체제 논의라는 새로운 카드를 제시했고 미국의 협상의지를 떠보기 위해 로켓발사를 강행했다. 그리고 로켓발사와 핵실험에 대해 미국이 추가제재로 대응하자 북은 즉각 6자회담 영구중단과 우라늄 농축에 의한 경수로 건설을 공언했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해 스티븐 보즈워스 특사의 방북 이후에도 적극적인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이명박 정부 역시 북핵협상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이른바 '그랜드 바겐(Grand Bargin)'을 내세우면서 사실상 6자회담 무용론에 경도돼 있었다. 그 와중에 천안함 사태가 발생했고 급기야 북으로서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그동안의 요구와 주장에 미국과 한국이 전향적으로 나서지 않음을 판단하고 꾸준히 준비해온 우라늄 농축 카드를 꺼내 들고 협상 여부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제 공은 미국과 한국에 넘어왔다. 북핵문제가 통제불능의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는데도 여전히 북의 선행동만을 요구하며 협상을 거부할 것인지 아니면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른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지금이라도 진지한 협상에 나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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