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밑도는 약세를 이어가는 데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간의 골 깊은 내분이 일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과거 유가가 약세로 돌아설 때마다 담합으로 가격을 끌어올렸던 회원국들의 공조체제가 깨지면서 사실상 OPEC 내 '가격전쟁'이 유가하락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익명의 OPEC 관계자들을 인용해 최근 잇달아 원유 공급가격을 낮춘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가 가격인하 단행에 앞서 OPEC 회원국들에 사전고지를 하는 통상적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전했다. OPEC 균열의 징후는 지난 8월에도 이미 감지된 바 있다. WSJ는 전통적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OPEC 석유장관 회동에는 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 석유장관이 일찌감치 도착해 회원국 간 의견조율과 언론대응 역할을 맡아 왔지만 올여름에는 알리 알나이미 장관이 회의 시작 직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고 전했다. 특히 알나이미 장관은 이 자리에서 OPEC 회동을 연간 1회로 줄이자는 '깜짝' 제안을 하기도 했다고 WSJ는 덧붙였다. 이는 회원국들이 직접 만나 의견을 나누는 의미가 없다는 사우디의 간접적 불만 표시로 풀이된다.
1960년에 설립된 OPEC에서 회원국들 간의 이해관계 상충에 따른 분란은 늘 있었지만 외부 악재로 유가가 하락할 때면 어김없이 가격 인상을 위해 공조체제를 구축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회원국들이 저마다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을 벌이면서 원유시장 장악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에너지 문제 전문가인 에이미 마어스 제프 UC데이비스 교수는 "OPEC 내부에서 가격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OPEC이 이토록 분열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갈등고조의 배경에 대해 WSJ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OPEC 중동 회원국들 사이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이해충돌이 최근 이라크 사태로 한층 악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셰일혁명 등 구조적인 시장여건 변화로 OPEC의 시장독점이 사실상 어려워진 점도 생존을 위한 내부경쟁이 치열해진 배경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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