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다음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미일 3자회담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해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조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군 위안부 강제모집에 대해 사과를 표명한 '고노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는 했지만 위안부 사과, 독도 문제 등 역사인식에 여전히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만큼 한일 양자회담에는 분명히 선을 그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일 3자회담에는 실리와 명문을 앞세워 응할 수 있지만 역사인식 문제가 걸려 있는 한일 양자회담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3자회담과 양자회담을 분리해 투트랙으로 개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일본이 반성하는 조치를 취하거나 행동을 보이지 않는데 양자회담에 선뜻 나서는 것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면서 "양자회담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사과, 독도 등 교과서 왜곡문제 등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인 조치가 수반돼야지만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선을 그었다.
한미일 3국 정상회담 가능성이 조심스럽게나마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일본이 태도 변화를 보이면서부터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입장 변화를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에 조그만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고 양국 관계 개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터져 나왔다. 고노 담화 재검증 움직임에 한국은 물론 미국까지 나서서 우려를 전달하자 일본이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아베 총리는 지난 14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현 내각에서는 담화 수정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베 총리가 지난 18일 "국회의 상황을 포함한 제반 사정이 허락한다면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해 (한국과) 미래 지향적인 관계 구축을 향해 계속 진력하겠다"며 사실상 한국과의 정상회담을 희망한다는 내용의 발언을 하면서 한미일 정상회담이 핵안보정상회의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국제사회의 비판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언론이 정상회담을 끊임없이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오는 4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 제스처를 보이기 위해 정상회담 가능성 여부를 가늠해보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에서는 이날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정상회담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해 논의했다.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이 핵안보회의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한국으로서는 회담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핵안보정상회의에선 북핵 문제에 공동 대응을 해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특히 양자 간 정상회담이 아닌 미국이라는 중재자가 있는 상황에서 3국 정상회담이라는 점도 정부가 명분을 지키면서 실리도 챙길 수 있는 방법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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