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일본 문제가 시끄럽다. 일본군이 자행한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걸핏하면 독도 영유권 문제를 거론하는 일본이 우경화 움직임과 함께 집단 자위권 문제까지 들고 나왔으니, 한 두건이 아니다. 한국 내 반일감정이 높아진 와중에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명량'의 최다관객 동원 신기록 행진은 어쩌면 일본을 격파한 것에 대한 통쾌함도 한몫하지 않았을까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적 해소가 결코 해결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반일' 혹은 '혐일' 감정에 휩싸여 은연중에 무시하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일본의 속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저자는 일본을 '공기의 나라'라고 했다. '공기(空氣)'란 일본 문화론자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1977년에 쓴 '공기의 연구'에서 가져온 말로, 일본 사회는 특정한 결정권자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무언의 중지(衆智)가 가리키는 '분위기'의 방향을 따라 조용히 집단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태평양 전쟁 당시 2,550대의 가미카제 자살공격비행단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이 어떻게 모집됐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작전과 체계 하에 이뤄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었다. 명령을 내린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 저자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사회와 조직은 '공기'에 의해 결정된다"며 "그렇게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것이 일본 국민들의 DNA에 박힌 오랜 습성"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본다면 현재 일본의 우경화는 아베 총리나 하시모토 토루, 이시하라 신타로 같은 정치인들이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은 일본 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 드러낼 뿐이며 "일본의 '공기'가 가리키는 방향인 우경화의 길로 질풍노도처럼 내달린" 결과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우경화의 '공기'를 제지할 수는 없을까. 저자에 따르면 과거에는 전쟁을 반성하고 평화헌법을 유지하는 '단카이 세대'가 있었으나 이들은 이제 늙어버렸고 현재 일본의 주축은 4050의 '버블 세대'가 잡고 있다. 고도 성장기에 태어나 일본의 호황을 기억하는 이들 버블 세대는 국가적 차원의 평화나 안전보장에 대한 주관이 없는 편이라 우경화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따라서 일본의 우경화에 대항한 항의방문 등의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현명한 대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한편 저자는 한국이 '중국패권론'에 기우는 것에도 우려한다. 중국과 미국의 경쟁을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는 나라가 일본이라고도 꼬집는다. 저자는 조만간 인도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지지하고 나설 것으로 예측하면서 일본이 중국의 팽창에 맞서 '일본-하와이(미국)-호주-인도'를 잇는 태평양 다이아몬드 구상을 추진 중이라는 것을 근거로 내놓았다. 중국의 팽창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집단 방어망이라는 명분도 있으니 말이다.
책은 '과거사'에 눈이 가려져 현재의 지정학적 위기를 미처 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독자로 하여금 자문하게 만든다. 팽창하는 중국과 몸 사리는 미국 사이에서 일본은 재도약을 꿈꾸고 있다. 저자는 "이순신은 반드시 이길 수 있도록 적을 치밀하게 연구하고 확실한 전략을 갖춘 뒤 싸웠다"며 "결코 (일본에) 지지 않기 위해 이순신의 '치밀함'을 본받아야 지일(知日)하고 극일(克日)할 수 있다"고 강한 어조로 말한다.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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