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각광받던 금 값이 무섭게 추락하고 있다.
올들어 뉴욕의 주가는 7% 정도 오른 반면, 금 가격은 6%나 떨어졌다. 또 금 값의 50일 이동 평균선이 200일 이동평균선을 만나는 '데드 크로스'를 눈앞에 두면서 투자자들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는 상태다. 월가는 지난 2001년 이후 이어져온 12년간의 강세장이 끝났다는 비관론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지난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당시 온스당 265달러에 불과했던 금값은 이후 지속적으로 올라 지난해 9월5일에는 온스당 1,895달러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돈 풀기는 금값에 날개를 달아줬다. 온스당 2,000달러는 물론, 일부 투자자들은 5,000달러까지 갈수도 있다는 기대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온스당 1,570~1,580달러대로 사상최고치에 비해 320달러 이상 주저 앉았다.
돈의 흐름에 가장 민감한 헤지펀드 거물들의 금 시장 이탈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최근 로이터통신은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자료를 인용,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인 조지 소로스가 지난해말 세계 최대 금 상장지수펀드(ETF)인 SPDR골드트러스트의 지분을 지난해 3ㆍ4분기 132만주에서 4ㆍ4분기 60만주로 절반 이상 줄였다고 보도했다.
타이거매니지먼트의 줄리안 로버트슨도 지난해 4ㆍ4분기 금 ETF인 마켓벡터골드마이너스의 지분을 전량 처분했다. 세계 최대 채권펀드 운용사인 핌코 역시 금 투자비중을 줄이고 있다.
반면 SPDR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존 폴슨 폴슨앤드컴퍼니 회장은 금 강세론을 지속하고 있고, 그의 지분은 2,180만주로 전분기와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 4ㆍ4분기에만 2억1,55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월가의 금 투자에 대한 시각도 싸늘하다. 시티그룹은 최근 "강세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갈수록 금 투자에 대한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며 "만약 강세장이 끝나면 앞으로 20년내에 온스당 1,950달러에 도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는 금 투자가 변곡점을 맞았으며 올해와 내년 금값 전망치를 각각 1,787달러, 1,744달러로 제시했다. 장기적으로는 오는 2018년까지 1,200달러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금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의 근거는 우선 금 투자를 뒷받침했던 거시 경제적 요인들의 소멸이다. 지난해 금 수요를 자극했던 미국의 재정절벽(정부 재정지출의 갑작스런 중단이나 급감으로 인한 경제 충격),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 중국의 경착륙 우려 등 세계경제의 불안 요소들이 점차 시들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연방공시장위원회(FOMC) 회의록 공개를 기점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완화 조기 종료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 또한 금 수요를 위축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올 들어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식시장이 활황을 보이면서 투자자금들이 금에서 주식으로 이동도 감지되고 있다.
세계 금 주요 수요처인 인도와 중국의 수요도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금 수입 억제정책을 펴고 있는 인도의 지난해 금 수입은 12% 감소했다. 중국은 최근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8개월만에 환매조건부채권(RP)을 발행해 시중 유동성을 흡수했는데 이 역시 금 수요를 위축시킬 것이란 전망이다. 인도와 중국 두 나라의 금 수요는 세계 전체의 39%를 차지한다.
선물 움직임도 단기적인 관점에서 금 값을 내리는 요인이다. CNBC는 금에 대한 풋(put) 포지션이 1,600달러에 몰려 있어 최근 풋 행사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했다. 짐 스틸 HSBC 상품애널리스트는 "주식시장이 하락하면 금이 강세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며 "상당기간 온스당 1,700달러를 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재로서 금 가격을 떠받칠 수 있는 것은 중앙은행뿐이다. 런던에 있는 세계 금 위원회(WGC)에 따르면 지난해 4ㆍ4분기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매입한 금 규모는 145톤으로 전 분기에 비해 29%나 늘어났고, 연간으로도 534.6톤의 금을 매입했다.
일부에서는 금 값이 너무 가파르게 내려감에 따라 가격에 민감한 수요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지만, 12년간 이어져온 금 강세장이 종료되고 있다는 게 월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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