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들리는 종자산업
해외품종 한번 자리 잡으면 20년 이상 대체 힘들어
과수·화훼·채소 등 종자사용 로열티만 연간 130억
| 감귤(일본산 궁천조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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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일본산 신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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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일본산 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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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팽이버섯(일본산 치쿠마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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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타리버섯(중국산 수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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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고기인 삼겹살과 함께 구워먹거나 얼큰한 전골에 단골로 들어가는 팽이버섯. 이름만 보면 토종품종 같지만 국산 팽이버섯 종자의 대부분은 일본산 치쿠마쉬다. 우리가 팽이버섯을 먹을 때마다 알게 모르게 로열티가 나가는 셈이다. 자주 먹는 버섯인 느타리버섯은 중국산 종자인 수한이고 새송이버섯은 일본 종자 큰느타리2호다. 표고는 일본산 종자 호켄, 양송이버섯은 미국산 스카이 종자를 쓰고 있다. 지난해 버섯 종자를 사용한 대가로 지급한 로열티만 49억원이 넘고 올해도 48억원가량을 내야 한다.
참다래도 마찬가지다. 참다래는 뉴질랜드산 제스프리골드(Hort16A)와 헤이워드 종자를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키위로 나간 로열티는 25억원, 올해도 24억원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나무에 주렁주렁 주황색 열매가 열린 모습이 연상되는 제주도 감귤은 어떨까. 감귤에 많이 사용되는 품종은 일본 후쿠오카현에서 들여온 궁천조생이다. 우리가 매년 과수와 화훼·채소 종자를 사용하느라 지급하는 로열티만 130억원에 달한다.
매년 수십 조원에 이르는 국내 농산물 생산액에 비해 130억원 수준인 로열티가 작을 수 있다. 하지만 외산 종자가 농가에 한번 자리 잡으면 적어도 20년 이상 대체가 불가능한 점을 알면 문제는 달라진다. 실제로 나주배 등 지역명을 딴 특산배 대부분은 일본산 종자 신고를 쓰고 있고 영덕사과 등의 사과 종자도 일본산 후지다. 품종보호기간이 끝나는 20년간 로열티를 지급하고도 외국산 종자는 여전히 우리 땅에 남아 있는 것이다.
이유는 농가들은 묘목을 교체했을 때 드는 비용과 수확량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더 좋은 품종이 있어도 쉽게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한 공장이 수십 년 동안 같은 설비로 생산하는 것과 같다. 전문가들은 오래된 외산 종자가 시장에 뿌리박혀 있으면 전체 과수의 품질과 생산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태욱 농촌진흥청 연구관은 "국내 환경에 맞춘 더 좋은 과수·채소 품종이 개발돼도 이미 땅에 심겨 있는 외산 품종을 대체하기 쉽지 않다"며 "기후는 변화했는데 과수는 몇십 년 전 품종을 쓰면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래된 외산 품종이 최근 개발된 국산으로 대체되면 전체 시장도 커지고 수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조언이다. 국산 딸기 설향이 개발돼 일본산 품종(장희·육보)을 몰아내고 시장의 78%를 점유한 데 이어 홍콩과 싱가포르 등으로 수출이 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2021년까지 수출품목과 수입대체품목 20개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민관합동 105개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신현호 한국종자협회 이사는 "'외산 종자→국산 종자 교체→업체 매출 증가→연구개발 확대→신품종 개발→수출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필요하다"며 "종자 산업을 국가 근간산업으로 보고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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