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싸움과 날치기 등) '동물국회'를 차단하기 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이 (법안 통과 지연 등) '식물국회'를 만들었다."(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
이 말은 여야 합의 없이는 쟁점법안을 하나도 통과시킬 수 없는 국회 상황에서 여권 내 팽배한 불만의 일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야는 실제 세월호 특별법을 처리하지 못해 지난 5월2일 본회의 이후 4개월 넘게 단 한 건의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했다.
익명을 원한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간 정치적 합의로 만들어졌지만 과반수 찬성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법안을 논의할 때 재적의원의 60% 이상이 찬성하지 않으면 그 법안을 통과할 수 없도록 만든 법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라는 대의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 것이라는 게 여당의 입장이다. 박대출 대변인은 "본래 국회선진화법은 소수의 목소리를 존중하려는 취지를 갖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현재는 소수의 존중을 넘어 소수의 횡포로 악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앞서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쟁점법안과 예산·세법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여야 이견으로 정국이 표류할 때도 헌법소원 제기 등을 강력히 주장했다. 당시 최경환 원내대표 시절 무쟁점 법안을 신속히 통과하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고 원로회의를 신설해 안건을 강제조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재개정안도 제출했으나 야당의 반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여권 핵심들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국회선진화법은 대표적인 악법으로 야당이 작정하고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식물국회가 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이 정치적으로 여야 간에 첨예하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다시 국회선진화법 헌법소원 카드를 꺼낸 것은 이대로는 주요 법안을 책임 있게 통과시킬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교섭단체 대표 간 합의가 없으면 한 발짝도 못 나아간다"며 "국회선진화법이라는 표현 자체도 마뜩잖다. 제대로 말하면 국회 무력화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이 폐기될 경우 쟁점법안을 놓고 여당의 날치기와 강행처리에 따른 여야 의원들 간 몸싸움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해답은 아니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국회선진화법은 판사 출신인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하던 시절에 주도한 법이어서 여당이 이를 폐기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비판도 있다. 한마디로 최근 막힌 세월호 정국에서 여당이 책임감을 갖고 중재하고 대안을 내놓고 설득해야지 힘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라는 게 야당의 입장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법률지원단장인 박범계 의원은 "국회선진화법을 헌법재판소에 넘긴다는 것은 19대 국회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지난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가 통과시킨 법들이 위헌적인 방식을 통해 통과됐다고 하는 자기부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법안 통과도) 19대 국회(전반기)에서 16·17·18대 국회(전반기) 때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부족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편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정국 파행이 조기에 종료될 경우 굳이 야당을 자극하면서까지 국회선진화법의 위헌 여부를 가릴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