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승 전문가로 전락했다는 말을 듣던 이창호가 모처럼 기염을 토했다. 제12회 농심배에서 이창호는 중국의 류싱ㆍ구리ㆍ창하오를 연파하고 한국팀에 우승컵을 안겨줬다. 막강한 연하의 중국 선수 3인 앞에 그가 나설 때 대부분의 구경꾼들은 이창호를 그리 신봉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3연승으로 모든 것을 끝내준 것이다. 우승한 것도 장하지만 무엇보다도 만 35세인 그가 건재함을 보여줬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회복됐다든지 복원됐다든지 그런 느낌이 아니고 그가 자기 자신을 새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가치관과 인격의 성숙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얼마 전부터, 대략 반년 전부터 그는 종래의 무조건 지지 않는다는 목적의 바둑에서 벗어난 인상을 줬다. 준우승을 하면 전에는 몹시 부끄러워했는데 '준우승도 잘한 것 아닙니까' 하며 감지덕지하는 얼굴이었다. 대국의 스트레스는 어느 구석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즐겁게 갖가지 패턴을 실험하면서 두고 있었다. 그러더니 드디어 값진 3연승이다. 이런 자세라면 이세돌이나 구리나 콩지에를 능히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기분이 좋아진 김에 결혼식을 선포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상대는 사이버오로의 이도윤 기자. 명지대 바둑학과 출신이며 도시적인 풍모를 지녔다. 바둑도 필자보다 확실히 세다. 아마6단 중에서도 센 6단이다. 흑29로는 참고도1의 흑1과 3을 먼저 활용하고 싶다는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백2로 A에 비트는 수단이 있으므로 그 선악은 쉽게 말할 수 없다. 백34는 고수의 감각. 백36ㆍ38도 마찬가지다. 흑39로 참고도2의 흑1에 뛰는 것은 백2가 좋아서 흑이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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