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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영원한 퍼스트레이디를 기리며-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


육영수 여사가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재일교포 문세광에게 저격당했던 1974년 8월15일은 대한민국 역사의 아픈 마디이다. '탕'하는 소리와 함께 아비규환이 됐고 당시 문공부 공연과장으로 현장에 있었던 필자는 총에 맞고 쓰러진 영부인을 급히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당황한 나머지 손을 덜덜 떨며 전화기 다이얼을 못 돌리는 유기학 수행과장을 대신해 필자는 서울대학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육 여사의 이송을 도왔다. 국민들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육 여사는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장례식은 5일 장으로 치르게 됐고 필자는 급히 국모의 마지막 길에 울려 퍼질 '추모곡'을 만들어야 했다. 박목월 시인에게 부랴부랴 작사를 부탁해 이틀 만에 탄생한 글귀를 가지고 작곡가 김동진 선생 댁을 찾았다. 누상동 자택의 허름한 건넛방에서 김 선생이 직접 피아노를 치고 미국에서 막 귀국한 이규도 성악가가 노래를 부르며 긴박하게 곡을 써내려갔다. 영결식이 있던 8월19일, 그렇게 완성된 추모곡이 이규도의 목소리로 중앙청 광장에 울려 퍼졌다. '가시다니 여사님 육영수 여사님/ 겨레를 사랑으로 감싸 주시고 밝은 귀 되어서 임의 높은 뜻 구김 없이 골고루 펴게 하시던 그 총명 그 음성/ 온화한 그 모습 하루아침 바람에 지고 말다니/ 온 겨레 두 손 모아 명복을 비오니 고이 잠드소서 육영수 여사님' 국민들의 슬픔을 대변하는 아리아가 세상을 뒤덮자 추모 행렬은 곧 눈물바다가 됐다.

노랫말처럼 육 여사는 생전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인자한 한 나라의 어머니였다. 필자는 한센병 환우들을 돕는 '라자로 마을 돕기회'의 초창기 운영위원으로 40년간 함께 했는데 1971년 육 여사가 나환자들의 정착촌인 '성 라자로 마을'에 방문했다. 그때 나환자들을 일일이 살피며 목욕·이발시설인 '정결의 집'을 직접 지어주는 등 정성을 다해줬다. 이듬해 국립무용단을 인솔해 진해 벚꽃축제에 갔을 때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나를 알아보고는 친히 옆자리로 불렀다. 당시 뮌헨올림픽 개회식을 준비하던 필자에게 육 여사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매우 가난한 나라로 생각하니 한국민속무용단의 의상과 소품을 최고로 준비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오라"며 마음을 써줬다. 이를 자양분 삼아 민속예술단을 이끌고 약 4개월간 세계 24개국을 순회공연하면서 국위선양할 수 있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올해 8월15일로 광복 70주년이 된다.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이기도 하지만 국모를 잃은 날이기도 하니 이날은 역사의 희비가 모두 서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8월15일,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이라는 슬로건 아래 광복 70주년의 기념일이자 그분의 41주기가 다가온다. 이제는 역사의 한 쪽으로 남은 '영원한 퍼스트레이디'의 지난 여정을 기리며 남은 자들이 그분의 몫까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힘찬 도약을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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