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경제민주화란 원래 성립되지 않는 단어다. 시장경제의 작동 원칙은 1원1표주의(주식회사 주주총회에서처럼 보유지분ㆍ출자액이 많을수록 의사결정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인데 반해 민주주의의 작동 원칙은 1인1표주의에 있기 때문이다. 경제 분야에 관한 한 두 원칙의 양립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양립할 수 없는 경제와 민주화라는 두 단어의 복합어가 우리 사회에서 많은 이의 공감대를 자아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점점 더 심화돼가고 있는 소득계층 간, 대ㆍ중소기업 간 양극화로 모두들 야생 세계의 냉혹한 경쟁보다는 사람 냄새가 나는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헌법에 경제력 남용 방지 등 명시
양극화와 냉혹한 경쟁은 이 시대 시장경제를 운영하는 국가들이 해소해야 할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토머스 게이건의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 아나톨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등은 20세기 말부터 제기돼온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이자 새로운 경제운영 패러다임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이라 할 수 있다. 또 그러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했기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경제민주화란 복합어의 논리적 정합성 여부를 떠나 사회구성원의 실존적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선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다.
그런데 경제민주화의 의미와 추진과제ㆍ방법 등에 대해서는 논자마다 시각ㆍ온도 차이가 너무 커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우리 헌법은 자유시장경제를 경제질서의 기본으로 한다는 제119조 1항에 이어 2항에서 경제민주화의 내용을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로 명료하게 정의하고 있다. 또 이를 구현하기 위해 국가가 경제주체를 규제ㆍ조정할 수 있다고 천명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와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 같은 헌법 조항은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근간으로 하되 극단적 시장체제의 폐해를 피하고자 하는 현대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현실적 운용지침 및 운용질서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헌법은 경제민주화 논쟁의 현실적 어젠다를 이미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을 위해 국가는 경제 구조조정 과정에서 심하게 폐해를 입는 부문을 배려할 책무가 있다. 그것이 경제정책 추구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제기되는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적정한 소득분배'를 위해서는 법인세와 소득세의 형평 부담이 논의의 핵심일 것이다.
논쟁도 유권자 설득도 경제논리로
한편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방지'문제는 구조적 문제와 행태적 문제로 나눠 논의할 필요가 있다. 불공정 하도급거래, 재벌의 부당내부거래, 담합 등 불공정거래 행태에 관한 것이라면 규제 수준에 대한 논의로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재벌의 출자총액제한ㆍ순환출자금지ㆍ금산분리ㆍ계열분리나 기업분할명령제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한 규제는 논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논쟁이 좀 더 생산적으로 진행되려면 이들 어젠다를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구조적 문제들이 우리 경제의 미래 경쟁력과 먹거리에 각각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경제 논리로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 시간이 있고 유권자도 충분한 판단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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