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18일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직업기초능력평가라는 생소한 시험을 봤다. 늘 보던 학업성취도평가 대신 치른 시험이었다. 국어·영어·수학 등 학업성취도평가와 과목은 같았지만 내용은 상당히 달랐다.
국어의 경우 고객과의 전화 대화를 들려주고 필요 서류를 안내하거나 회의 내용을 보고 기획 방향의 핵심을 짚어내는 문제들이 나왔다. 수학 시험에서는 물품대금을 청구하거나 판매수익을 계산해보도록 했다. 직업현장에서 필요한 의사소통·계산·문제해결 능력을 보는 문제들이었다.
김연준(18)군은 "처음 겪어보는 시험이라 무척 어려웠다"면서도 "이런 평가를 자주 연습하다 보면 취업할 때 도움될 것 같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김군은 "나중에 보쉬(Bosch) 같은 외국계 기업에 들어가고 싶은데 이번 평가에 나온 실전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말했다.
특성화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보다는 산업현장에서 바로 일할 수 있는 기능인력을 키우는 학교다. 그럼에도 그동안 특성화고 학생들을 평가하는 시험은 인문계 교육과정에 초점을 맞춘 학업성취도평가가 전부였다. 이 때문에 특성화고 학생들에게는 직무에 필요한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평가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이어져왔다. 같은 국어·수학이라도 실전적인 내용을 가르치고 평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교육부는 대한상공회의소, 역량평가 전문 연구기관인 ORP연구소, 휴먼어세스먼트인스티튜트와 더불어 2011년부터 직업기초능력평가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문제개발에는 산업현장 전문가와 특성화고 교사들도 대거 참여했다. 평가를 위한 기본 틀은 국가직무능력평가(NCS)에서 따왔다. NCS는 직업별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의사소통·문제해결·대인관계 능력 등을 정해놓고 있다.
2012년 10월에는 처음으로 전국 700여개 특성화고 2학년 학생 12만명을 대상으로 직업기초능력평가를 시범 실시했다. 시범 평가를 바탕으로 문제를 수정·보완해 지난해 12월에도 특성화고 2학년을 대상으로 다시 한번 평가를 치렀다.
교육부는 교육과정도 평가의 취지에 맞게 '실전화'하도록 학습교재를 만들고 선생님들의 연수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시험 결과를 등급별로 평가하고 생활기록부에 반영하는 방안도 추진해 평가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노국향 휴먼어세스먼트인스티튜트 대표는 "직업기초능력평가에 따라 실무 능력을 키운 학생들이 단순히 학문적인 지식만을 쌓은 학생보다 산업체에서 일할 때 훨씬 유리하지 않겠느냐"며 "미국은 직업기초능력평가를 성인들의 직무역량을 평가하고 인증 결과를 기업 채용시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는 이 같은 방향으로 확대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