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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걸리버가 된 C-IT

고광본 정보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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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성장세가 놀랍습니다. 우리는 카운터 파트너로 상대도 안 하려고 합니다" 계열사와 함께 중국에 동반진출한 국내 한 IT 대기업 대표는 현지 대형 IT업체에 공식 루트를 통해 최고경영자(CEO) 회동을 제안했지만 3개월째 감감무소식이라며 답답해했다.

# "세계 최대 게임회사는 중국의 텐센트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셧다운제 등 규제로 뒷걸음질하는 사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요" 국내 빅3(넥슨·엔씨소프트·넷마블) 게임사의 한 임원은 다음카카오의 2대 주주이자 넷마블의 3대 주주인 텐센트가 왕성하게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다며 혀를 내둘렀다.

# "삼성전자도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은 물론 샤오미와 화웨이에까지 밀리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앞서 온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까지 넘보는 상황입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CEO들을 의무적으로 실리콘밸리에 정기 근무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려 한다는 얘기가 나오자 삼성 안팎에서 보인 반응이다.

'짝퉁'의 대명사였던 중국 IT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환골탈태하고 있다. 기술과 자본력을 대거 축적한 샤오미와 알리바바·비야디 등은 중국을 넘어 IT의 본고장인 미국 시장 공략에 시동을 걸었다. 거인국에서 소인국으로 옮겨간 걸리버와 같은 기세다.

후발 中 기업, 이젠 세계시장 선도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한국과 중국·일본 및 유럽연합(EU)의 10대 전략기술을 평가한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2012년 중국은 미국에 비해 기술력에서 6.6년이 뒤졌지만 지난해는 5.8년으로 줄었다. 한국과의 격차도 불과 2년 만에 5개월이나 줄이며 1.4년 차로 바짝 따라붙었다. 전자·정보통신과 의료·바이오, 항공·우주 등 10대 분야 120개 국가전략기술의 논문과 특허의 질적 분석과 전문가 델파이조사(연구주제 관련자들에게 익명으로 설문조사 반복)를 통해 평가한 것으로 중국의 활발한 M&A, 광대한 내수시장 우위, 정부의 전폭적 지원, 파괴적 혁신 경쟁 등을 감안하면 결코 앞섰다고 볼 수도 없다. 우주·항공 등 18개 분야는 뒤처진 지 오래다. 일각에서는 "고구려 광개토태왕 시절에나 한국이 중국을 압도했을 뿐 언제 중국을 앞선 적이 있느냐"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파죽지세로 달리는 중국 기업과 달리 한국 기업들은 활력을 잃고 있다. 조선·철강·석유화학은 말할 것도 없고 강점을 갖고 있던 전자와 자동차 분야도 엔저와 더딘 혁신으로 난관에 봉착했다. 경제통으로 불리는 나성린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서울경제신문이 주최한 '대학생 시장경제 특강'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10~15년 전부터 선진국이 되려면 연평균 5.2%씩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제는 잠재성장률이 3.8%에도 미치지 못하고 저출산과 고령화마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는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인 기업들이 활력을 못 찾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나 의원은 진단한다.

여기에 공무원연금 개혁 등 4대 분야 개혁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청와대나 정부, 국가백년대계보다는 표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여야 정치권, 혁신 마인드와 실행력 부족으로 제 살길 찾기도 바쁜 기업, 기업투자를 해외로 돌리게 만드는 대기업 위주의 투쟁적 귀족노조, 비정규직 차별이 심해지는 노동시장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나마 남북 경제협력이 저성장의 돌파구로 꼽히지만 7년간이나 꽉 막힌 남북관계는 또 하나의 장애물이 된 상황이다. 이러는 사이에 중국 기업들은 IT·사물인터넷(IoT)·핀테크(fintech)·전기차, 바이오·의료 등 첨단융합 분야에서 기술과 자본력을 축적하며 세계시장은 물론 우리 안방까지 내놓으라고 하고 있다.

韓, 기업 발목잡는 정치탓 진퇴양난

식물은 번식(수정)을 위해 벌이나 나비 등의 도움을 받는 충매화가 있고 소나무처럼 곤충의 도움 없이 바람으로 수분하는 풍매화도 있다. 풍매화는 번식을 위해 아주 많은 꽃가루를 방출하고 바람에 잘 날릴 수 있도록 꽃가루에 공기주머니까지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기업의 성장을 위해 도움을 주는 곤충의 역할을 할 수 없다면 기업들이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다양한 시도를 막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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