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실종된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가 3만피트(약 9,100m) 이상의 고도에서 공중 분해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관련국들은 사흘째 추락지역으로 추정되는 말레이시아 북부 해안에서 베트남 남부 해안에 이르는 광범위한 해상에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음에도 잔해를 여전히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사고원인도 잔해가 발견되고 철저한 분석이 이뤄진 후에나 추론할 수 있는 만큼 섣부르게 예단할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테러에 의한 항공기 폭발을 시사하는 정황증거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베트남·말레이시아를 비롯해 미국·중국 등 9개국은 10일(현지시간) 20여개의 항공기 및 40여대의 선박을 동원해 8일 사라진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에 대한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잔해 확인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고기에서 유출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름띠가 전날 베트남 남부 해역에서 발견된 데 이어 이날 부근 해역에서 비행기 문짝으로 보이는 물체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지만 베트남 수색구조통제본부는 "수색 결과 어떠한 물체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기름띠는 사건 발생일 당시보다 4배가량 번져 이 지역 인근에 사고기 잔해가 떨어졌을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사고발생 이후 사흘째 전방위 수색작업이 실시됐음에도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면서 전문가들은 사고기의 공중분해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고기는 8일 0시41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이륙해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다 순항고도인 3만5,000피트까지 상승한 뒤 같은 날 오전2시40분께 사라졌다. 만약 이 고도에서 내외부의 충격 없이 그대로 추락했다면 해수면과 부딪힐 때의 충격만 본체에 전해져 기체 잔해가 모여 있는 형태가 발견됐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이번 수색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을 통해 "사고발생 이틀이 넘도록 잔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비행기가 3만5,000피트 상공에서 분해됐을 개연성을 강하게 시사한다"고 전했다. 1985년 대서양 상공에서 폭발한 인도항공 여객기나 1988년 '로커비 사건'처럼 3만피트 이상의 고도에서 비행기가 폭파돼 공중 분해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고지역 인근을 관할하는 미국 정찰위성은 현재까지 공중폭발과 관련한 어떤 증거도 수집하지 못했다고 로이터는 미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여전히 테러에 인한 사고 쪽에 무게가 실리는 정황증거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쉰에 따르면 '중국순교자여단'이라는 단체가 1일 발생한 쿤밍 테러 사건에서 중국 당국이 부녀자를 비롯한 범인들을 무차별 살해한 데 대한 보복으로 이 같은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또 대만 항공당국은 일주일 전 자칭 국제 대테러조직의 일원이라는 인사로부터 베이징 서우두공항이 테러 목표가 될 것이라는 경고 전화를 받았다고 대만의 한 언론이 전했다.
아울러 이번 사고기 탑승자 중 2명이 도난된 유럽인 여권을 사용했다는 소식과 관련해 말레이시아 당국은 이 승객이 유럽인이 아닌 아시아계라고 이날 밝혔다. 이들이 예약한 e티켓이 연속번호로 이뤄졌고 태국 휴양지 파타야에서 동시에 발권된 점 등에 비춰 사전공모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수사당국은 이들 외에도 2명의 추가 의심자를 수사 중이라고 밝힌 상태다.
한편 도난된 오스트리아·이탈리아인 여권을 가지고 아시아계 인사가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비행기에 탑승한 데 대해 항공 보안에 심각한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도난여권은 2012년·2013년도에 태국에서 도난돼 이미 인터폴의 도난·분실여권 데이터베이스(DB)에 입력돼 있었음에도 말레이시아 당국은 대조절차를 일절 거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폴은 도난·분실 DB와 대조가 이뤄지지 않은 채 국제선을 이용한 사례가 지난해만도 10억건이 넘는다고 9일 밝혔다.
아흐마드 자히드 하미디 말레이시아 내무장관은 이에 대해 "동양인의 얼굴을 한 사람이 유럽 여권을 사용했는데 출입국사무소에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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