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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들은 그들이 기울인 노고에 대한 평가가 야박함을 호소한다. 미술 분야에서 회화의 비중이 앞서가는 탓에 애호가들의 외면을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상자들은 조각이 어렵다고 푸념한다. 사실적인 형상을 재현한 구상조각에 익숙한 경우 현대적인 추상조각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은 탓이다. 마침 미술관들이 조각 기획전을 잇따라 열고 있다. 이번 전시들을 차분히 챙겨보면 그 같은 간극을 줄이는데 적잖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신문로 성곡미술관은 한국 추상조각 1세대인 엄태정(71)의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개인전을 ‘쇠, 그 부름과 일’이라는 제목으로 열고 있다. 조각 26점과 드로잉 26점이 미술관 전관에서 선보인다. 육중한 철로 만든 장방형과 선형의 조각작품은 말 그대로 ‘추상조각의 정점’을 보여준다. 작가는 “예술의 본질과 시간성과 공간성 등 모든 문제를 드러내다 보니 기하학적인 추상 조각이 됐다”고 말한다. “억지로 뭔가를 만들려 하지 않고 그냥 소재 자체를 바닥에 내려놓는 마음”이라는 게 작품에 대한 설명이다. 천생 조각가인지라 선과 면을 배열한 회화는 나무를 다듬어 만든 조각 같고, 안료의 번짐을 이용한 작품은 녹슨 철의 물성을 평면에 얹은 듯 보인다. 서울대 교수에서 은퇴한 뒤 화성 작업장에서 조각에만 몰두한 그가 12년 만에 연 국내개인전으로 28일까지 계속된다. (02)737-7650 작고한 ‘조각가 우성(又誠) 김종영(1915~1982)은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로 평가 받는다. 그가 한국 조각계에 남긴 영향을 돌아보는 ‘스승의 그림자-제자들의 빛’ 전시에는 걸출한 현대조각가 40명이 참여했다. 김종영이 서울대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로 부임한 이후 1980년까지 길러낸 김세중부터 송영수, 최의순, 최만린, 최종태 등 한국 조각의 주역으로 활동했던 제자들이 스승의 영향을 되짚어 본다. 또 같은 시기 김종영이 제작한 작품 10여점과 드로잉도 선보인다.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 7월9일까지 전시한다. (02)3217-6484 이 외에도 애경그룹이 운영하는 삼청동 몽인아트센터는 설치작가 지니서의 개인전 ‘무지개의 끝’을 7월 19일까지 보여준다. 철을 소재로 한 입체 설치작품이 1,2층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회화성이 강한 작품이면서 관람자가 작품 속을 거닐며 감상할 수 있다는 게 특이하다. (02)736-1446 이화여대박물관이 개교 123년을 기념해 마련한 특별전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조각사를 짚어보는 기회다. 특히 현대조각전은 한국 금속 추상조각의 계보를 살펴볼 수 있는 자리이며 7월24일까지 열린다. (02)3277-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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