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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헛바퀴만 돈 경제 살리기


몇 년 전 스탠퍼드대학의 한 심리학과 대학원생이 분석한 실험 내용이 흥미롭다. 충분히 곱씹어볼 만하다.

한 사람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박자에 맞춰 탁자를 두드리게 하고 다른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음악을 맞추는 게임을 하게 했다. 노래는 크리스마스캐럴과 같이 누구나 다 아는 것으로 골랐다. 모두 120곡의 노래를 틀었다.

얼마나 맞췄을까. 두드리는 사람은 50% 정도 정답을 맞췄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맞춘 정답은 단 3곡, 정답률이 극히 미미했다.

이 대학원생은 그 차이가 최고경영자(CEO)와 구성원 간 커뮤니케이션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오류라고 진단한다. CEO가 아무리 자신의 경험을 담아 비전을 설명해도 구성원이 이해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고 비전도 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두드리는 자와 듣는 자(Tapper and Listener)'라는 실험이다.

예전에 한번 인용한 적이 있는 이 연구사례를 다시 끄집어낸 것은 이 정부의 외침이 갈수록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해서다. 국가개조를 비롯해 양극화 해소, 규제 완화, 경제살리기 등 수없이 강조하는 말들이 지금 기업과 국민의 귀에 어떻게 들릴지 궁금하다.

재계 구심력 잃고 신규투자 엄두 못내

우선 세월호 참사 이후 내건 국가개조 선언은 이미 변질돼 들리기 시작했다. 총리후보자 자격 논란이 이를 부추겼다. 국가개조라는 말이 어느 순간 우파체제 강화나 측근 강화로 들리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세월호의 아픔을 넘어 경제살리기에 여야가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대한민국은 당분간 이 문제로 허송세월을 보낼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됐다.

떠날 총리가 연일 재계를 만나 투자를 호소하는 것도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릴 것 같아 안쓰럽다.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투자가 절박하겠지만 규제 완화 외침 속에 오히려 규제가 늘어났으니 투자호소가 귀에 제대로 들어올 리 없다.

더구나 재계는 지금 구심점을 잃은 상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병상에 있고 최태원 SK 회장은 옥살이를 하고 있다. 김승연 한화 회장도 여전히 치료 중이다. 그 아래 수많은 기업들은 직원들을 대폭 줄여야 할 정도로 사업 구조조정에 몸살을 앓고 있다. 대기업을 대표하는 전경련은 힘을 잃은 지 오래고 경총도 몇 개월째 회장직이 공석이다. 재계의 투자를 이끌어낼 만한 주체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각 기업은 글로벌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내수부진까지 겹치면서 신규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처지다. 재고가 넘쳐 나는데 신규투자를 하는 것은 경제논리에 반한다.

설령 투자를 한다고 해도 대기업을 죄악시하고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이슈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국내보다는 해외로 나가는 게 더 현실적이다.

이미 상당수 기업들의 투자비중은 국내보다 해외가 더 많고 해외비중을 더 높이려 하고 있다. 기업들이 최근 국내 투자내용의 공개를 꺼리고 해외투자에 대해서는 가능한 언론보도 자제를 요청하고 있는 것도 정부의 투자와 일자리 창출 요청, 노조의 반발 등이 두려워서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법이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를 요청하고 있으니 제대로 먹혀들지 의문시된다.

투자여건 조성 후 동참 유도해야

우여곡절 끝에 새 경제팀이 꾸려졌다. 아직 청문회 등의 통과의례가 남아있긴 하지만 전임 경제팀보단 한결 나을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 하지만 규제 완화를 외쳐놓고 규제가 오히려 늘어나거나 투자를 요청하면서 그 토대를 마련하지 않으면 아무리 두드려도 듣는 자는 전혀 다른 답안지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손바닥 하나로는 결코 소리를 낼 수 없다. 정부와 기업·국민이 모두 손을 마주쳐야 경제살리기가 가능하다. 이것이 안돼 전임과 그 전임 정부도 실패했다.

새 경제팀은 정부의 외침이 기업과 국민에게 제대로 들리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살리기는 또 헛바퀴만 돌게 된다.

/이용택 산업부장(부국장) ytl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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