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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간선택제 일자리 문제의 본질


이달 중순 박근혜 대통령이 '시간제 일자리'를 '시간선택제 일자리'로 바꿔 부르자고 제안했다. 어감이 나쁘다는 이유에서다. 기존에도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나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등으로 다양하게 불렸는데 또 하나의 애칭이 붙게 생겼다. 용어를 바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생겨난다면야 대환영이지만 문제의 본질은 용어가 아닌 듯하다.

대통령이 말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란 '자기 필요에 따라 풀타임이나 파트타임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정규직과 차별 없고 정년도 보장되는 반듯한 일자리'다. 엄마들은 차별 없이 직장에 다니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고 학생들은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름 바꾼다고 근로조건 개선안돼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들은 점진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며 인생 2모작을 설계할 수 있으며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주 3일 근무로 전환할 수도 있고 다시 풀타임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 한마디로 환상적인 일자리다. 문제는 너무 환상적이라 현실성이 없다는 데 있다.

현실에서 시간제 일자리는 '나쁜 일자리'의 대명사다. 출혈 경쟁에 시달리는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이 주로 시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며 시간제 일자리 종사자 대부분은 고령층ㆍ여성ㆍ저학력자 같은 취업 애로계층이다. 그래서 임금도 싸고 근로조건도 열악하다. 만약 대통령이 말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법으로 강제한다면 현실에선 어떤 일이 발생할까. 음식점 주인은 아르바이트생의 임금을 올려줘야 하고 4대 보험과 퇴직금, 유급휴가에서도 주방장과 차별이 없어야 한다. 약 400만원의 추가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는데 버틸 여력이 있는 음식점 주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창출되기는커녕 있던 일자리마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먼저

사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현실에 정착하기 힘든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노동시장의 고질적인 문제, 즉 정규직 노동시장과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분단구조 심화 때문이다. 이러한 분단구조는 기업과 정규직 근로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형성된 것이며 그래서 매우 견고하다. 기업의 경우 경쟁 심화와 정규직의 고용ㆍ임금 경직성에 대응해 핵심 업무는 정규직을, 비(非)핵심 업무는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관행이 확산돼 있다. 정규직 근로자는 강력한 노동조합을 기반으로 임금 인상과 고용 안정을 쟁취했지만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의 처우는 악화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기업과 정규직 근로자의 이해관계를 바꿔야만 노동시장의 분단구조를 깨뜨릴 수 있으며 그래야만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현실에서 자리 잡을 수 있다.

또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 전제돼야 한다. 생산성 향상으로 파이를 키워야만 기업도 성장하고 시간제 근로자의 임금도 높여줄 수 있다. 노사정 대타협도 필수조건이다. 근로자와 기업 모두 한발씩 양보하고 정부 지원도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5년 내에 시간선택제 일자리 93만개를 창출하겠다고 한다. 무리한 계획이다. 일자리 늘리기에 치중하다 보면 의도와는 달리 나쁜 시간제 일자리만 양산할 수도 있으며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고집하다 보면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공법, 즉 노동시장 분단구조 단절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정부가 노력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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