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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멸감 주고 받는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입니다"

김찬호 교수 '모멸감' 출간


초등학교 2학년, 별 생각없이 합창반에 가입한 아이는 교사에게서 면박을 듣는다. 좁은 교실에 가득한 학생들을 보며 교사는 짜증스럽게 아이 머리를 툭툭 치며 '이건 또 뭐하러 왔어'라고 내뱉는다. 그 때는 그렇게 지나갔지만 아이는 잊지 않았다. 대학생을 거쳐 이제 50이 넘은 나이에도 가끔씩 그 기억은 그에게 참을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이게 했다. 바로 '모멸감'이었다.

"그 감정은 지금도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실제 강의를 하다보면 사람들도 저마다 마음 속 응어리진 감정을 떠올리며 놀랍니다.모멸감은 가슴에 묻어두면 어디선가 부작용을 일으키죠. 스스로의 감정이 왜 어디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알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모멸감에 잘 휩쓸리는 겁니다."

'문화의 발견' '돈의 인문학' 등 한국사회를 만드는 일상적인 문제들에 주목해온 김찬호(52·사진) 성공회대 교수가 이번에는 감정, 특히 '모멸감'을 주제로 책을 냈다. 특히 작곡가 유주환이 참여해 책 내용에 어울리는 음악도 제작해 CD와 함께 출간했다.

지난 28일 서울 퇴계로 사무실에서 만난 김 교수는 "분노는 발산되고 슬픔은 위로받지만, 모멸감은 표현 자체가 안됩니다. 느끼는 것 자체가 수치심을 불러 일으키고, 다시 새로운 모멸감으로 이어집니다. 최근 SBS프로그램 '짝'이나 국정원 직원의 자살 기도 경우도 마찬가지죠"라고 설명했다.

그가 처음 모멸감에 주목한 것은 2011년. 김우창 교수의 책에서 한국사회를 '오만과 모멸의 구조'로 설명한 부분이었다. 이를 주목해 강연까지 나섰지만 책으로 펴내는 것은 망설여졌다. 그는 "처음 강의를 시작할 때 저도 피해자라고 생각했지만, 곧 가해자이기도 함을 깨달았습니다. 모두가 가해자고 또 피해자입니다. 책을 쓰며 스스로 '자격이 있나', '모순'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하지만 대안보다는 '조심해야 한다'는 취지로 썼습니다. 집필하며 많이 반성하고 치유받고 변했다고 느낍니다"라고 털어놓았다.



현대사회에서 모멸감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모호하다. 의도와 상관없이 무시하는 듯한 표정이나 비웃는 눈빛, 퉁명스런 말투만으로 간단히 모멸감을 느낄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의미의 모욕감은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는 괴로운 감정이다. 하지만 타인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데서 유발되는 수치심과는 구별된다. 그는 "실수로 바지 지퍼를 열어놓은 채로 다녔다고 모멸감을 느끼지는 않지만, 회사 후배에게서 무시당했다는 느낌은 모멸감으로 이어집니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모욕감은 타인이 나를 대하는 태도때문에 발생하고 여기에 은근히 무시하고 깔보는 태도, 경멸하는 느낌이 더해지면 모멸감이 된다. 수치심에서 모욕감, 모멸감으로 이어지는 느슨한 교집합이다.

김 교수는 사람들이 모멸감에 취약한 것을 자아가 약해져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인관계에서 남에게 강요하거나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사랑스럽게 가꾸고 서로 안전한 관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가정에서조차 잘 안됩니다. 부모 역시 하나의 기준으로 자녀들을 다그치죠. 결국 이는 남을 끌어내려야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사회는 남의 시선이나 행동에 너무 관심이 많습니다. 그게 없어져야 모멸감도 사라집니다."

@sed.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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