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원내대표가 사퇴하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정작 사퇴를 결정해도 청와대로서는 적지 않은 상흔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통을 중시하는 이병기 비서실장 체제 이후 여의도 정치에 대해서도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했던 참모진이 최근 함구로 돌아선 것도 이 같은 엄중한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로서는 유 원내대표가 유임을 고집하면 계파갈등 고조, 당청관계 파열, 국정운영 동력 상실 등을 감수해야 하고 레임덕으로 내몰리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반대로 유 원내대표가 사퇴를 한다고 하더라도 상처가 깊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응어리진 계파갈등을 해소하고 굳건한 당청 공조체제를 구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 원내대표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이중 딜레마'에 빠져 드는 모양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대치국면은 박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가 기싸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는 결국 당청 간 세력다툼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며 "유 원내대표가 물러나더라도 '제왕적 대통령' '여당에 군림하는 청와대' 등과 같은 따가운 눈총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청와대가 유 원내대표를 물러나게 한 뒤 내년 총선을 위해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을 지도부에 심을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며 "청와대가 마치 새누리당 조직개편에 나서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부담요인이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유 원내대표 사퇴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향후 벌어질 친박계와 비박계 간 대립, 청와대와 김무성 대표 간 어정쩡한 관계, 당청 대립 등 서로 각을 세우는 구도가 형성될 것이 뻔하다는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 원내대표가 물러난다 하더라도 청와대가 여권 세력재편에 들어갔다느니, 여당 길들이기에 나섰다느니 등 여론의 따가운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유승민 사태가 어떻게 해결되든지 간에 청와대도 패자(敗者)로 남을 수 있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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