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잇따라 개봉됐던 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주먹이 운다'에는 같은 아파트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6층의 구름다리를 통해 단지에 출입할 수 있는 독특한 구조의 이 아파트는 눈으로 보기에도 족히 지은 지 수십 년은 돼 보일 만큼 낡아 있다. 1970년 준공된 서울 중구 회현동1가의 '제2시민아파트'다.
12일 서울시와 업계에 따르면 시는 지은 지 44년이 넘은 회현 제2시민아파트를 존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시는 최근 이를 위해 아파트 활용 방안 마련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10층짜리 1개 동 315가구 규모의 이 아파트는 54㎡로 설계됐으며 중앙난방과 개별 수세식 화장실까지 갖춰 건립 당시에는 정부 고위관료와 연예계 인사들의 거주지로 인기가 높았던 곳이다. 하지만 40년을 훌쩍 넘기면서 낡은 외관은 물론 안전에도 문제가 있어 현재는 재난위험시설물 D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시는 2006년 주민 퇴거를 위한 보상계획을 공고했으며 이후 159가구가 이주를 완료했지만 여전히 나머지 주민들은 건물에 거주 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만큼 존치 가능 여부를 가리는 차원에서 용역 발주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자칫 건물을 존치할 경우 심각한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건물의 재난안전등급은 A~E 다섯 단계로 나뉘는데 D등급의 경우 당장 사용제한 여부를 결정해야 할 정도로 구조적 결함이 있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김명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재난위험시설 D등급의 건물을 존치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라며 "역사성이 있는 건물을 후대에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민의 안전"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형평성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회현 제2시범아파트와 같은 해에 지어져 똑같이 재난위험시설 D등급으로 분류된 서부이촌동 시범중산과 이촌시범아파트는 최고 30층 높이의 아파트로 개발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같은 처지의 아파트를 한쪽은 존치하고 다른 한쪽은 고층개발을 허용해주면 형평성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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