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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최근 수 백대를 공개하면서 핵(核)을 둘러싼 한반도의 지형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더구나 일본 언론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 준비보도가 나오는 등 핵을 둘러싼 파장이 커질 조짐이다. 미국이 예정에 없이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단장으로 한 범정부 대표단을 긴급히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으로 파견시킨 것도 북한의 내밀려는 핵 카드가 간단치 않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 일본 등을 긴장케 한 것은 북한이 미국의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에게 공개한 원심분리기다. 원심분리기는 고농축우라늄(HEU) 제조에 사용돼 핵 무기로 전용될 수도 있다. 특히 초현대식 제어실을 통해 통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설치 대수도 2,000대에 이른다는 게 북한의 주장이다. 원심분리기 2,000개 정도는 우랴늄 핵무기의 임계질량(약 20kg)을 제조하는데 필요한 장비 수준으로 제시돼 왔다. 이와 함께 북한이 최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새로운 갱도를 건설하는 등 제3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된 것도 보즈워스가 긴급하게 한ㆍ중ㆍ일 3개국을 방문한 배경으로 보인다. 상황에 따라 북핵 카드가 부각돼 한반도 정세가 요동칠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한 외교소식통은 21일 “북한의 움직임이 단순히 엄포를 넘어 ‘실체적 위협’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6자회담 관련국들의 대응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보즈워스 대표의 한ㆍ중ㆍ일 방문에 이어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22일 중국을 방문해 중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회동한다. 한ㆍ미ㆍ일은 고농축우라늄 문제에 대한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한편,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의 행동을 자제하게 해달라고 설득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전형적인 ‘벼랑끝 전술’로 도발에 나설 경우 북핵의 국제적인 비확산 활동에 주력해온 미국과의 충돌이 격화될 우려가 크다. 북한은 우라늄농축과 관련된 경수로 건설이 주권국가로서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럴 경우 북미간의 첨예한 대립이 불가피해져 교착상태인 6자회담의 재개도 예측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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