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인 종로구 백운동(白雲洞)계곡에는 옛날 '백운동천'이 흘렀고 이는 청계천으로 이어졌다. 옛 그림을 보면 서촌의 절경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언덕에 '백운동천(白雲洞天)'이라는 각자가 새겨진 바위가 지금도 눈에 선명하다. 각자 옆에는 작은 글씨로 '광무7년(光武七年)' '동농(東農)'이라는 글자도 있다. 즉 1903년에 동농 김가진(1846~1922)이라는 사람이 쓴 것이다. 그의 저택인 '백운장'이 근처에 있었다. 건물 규모와 경관에서 '장안의 으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김가진은 구한말 외무대신·법무대신·중추원 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일본에서 '남작' 작위를 주려고 했지만 거부하고 백운장에 칩거하다 1919년 3·1운동 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 고문 등으로 활약했다. 일제는 처음에 임시정부를 '어중이떠중이 상것들'의 모임이라고 선전했는데 김가진의 참여가 일제와 조선의 고관대작들에게 충격을 줬다고 한다. 그는 조선말 장관급 이상 고위관리 중에서 해외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참여한 유일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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