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 100일이 지나면서 창조경제가 드디어 윤곽을 드러냈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국민들은 창조경제 정책 덕에 살림살이 피는 걸 과연 기대해도 될까.
대선 때부터 '창조경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란 구호를 외쳤던 현 집권세력은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도대체 창조경제가 뭐냐"며 당정끼리 논전을 벌여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덜렁 창조경제란 제목만 있었던 모양이다.
원래 창조경제는 댄 세노르와 사울 싱어가 쓴 '창업국가'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고들 한다. 실제로 이 책을 번역한 윤종록씨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제2차관으로 입각했다. '한국말을 잘 못하는 미국인'김종훈 씨가 미래부 장관에 내정된 것도 윤 차관과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여하튼 5일 발표된 '창조경제 실현계획'을 보면 정부는 5년간 40조원을 쏟아 부어 창업생태계를 조성하고 벤처ㆍ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단다. 15년 전 김대중 정부의 벤처창업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과거 정책이 성과가 있었는지, 또 10년, 20년 뒤를 준비하는 국가전략으로 유효했는지 먼저 따져볼 일이다.
벤처에 돈 퍼붓기가 생태계 망쳐
결론부터 말하면 당시 벤처창업 정책은 벤처창업 생태계를 견실하게 키워내지도 성공한 국가전략으로 한국 경제와 사회에 긍정적 유산을 남기지도 못했다. 그저 투기를 부추겨 경기를 띄우는 수단으로 이용됐을 뿐이다.
당시 별볼일 없던 코스닥시장에는 수십조원이 물밀듯 쏟아져 들어갔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때처럼 코스닥시장은 시가총액이 단기간에 13배로 늘어났다가 펑 터져 버렸다. 싹을 틔우려던 벤처생태계는 그때 말라 죽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 신경제 붐이 있었지만 벤처인증 도장을 마구 찍어주고 '무늬만 벤처'들에 돈 퍼주기를 하며 투기판을 조장한 정부 탓이 크다.
요즘 그 벤처 정책 덕에 매출 1,000억원이 넘는 벤처기업이 381개나 생겼고 이들의 총 매출액을 합치면 77조원으로 재계 6위에 해당한다는 자화자찬이 나돌고 있다. 창조경제 타령에 장단을 맞추는 소리다. 하지만 381개 기업을 뜯어보면 1970년에 설립한 국순당을 비롯 한국야금(1966년)ㆍ대륙제관(1966년)ㆍ동양피스톤(1967년)ㆍ일신화학공업(1967년)ㆍ한일사료(1968년)ㆍ이구산업(1971년)ㆍ신성이엔지(1977년)ㆍ태준제약(1978년)ㆍ까사미아(1982년)ㆍ놀부(1987년)ㆍ이건창호(1988년) 등 1960~1980년대 창업해 이미 탄탄히 기반을 잡고 있던 기업들이 부지기수다.
창업한지 수십년 뒤에 벤처 도장을 찍어줘 놓고는 이들 기업이 지금 이렇게 성장한 건 온전히 도장 덕분이라는 꼴이다. 실제로 실리콘밸리식 벤처성공 모델은 NHN, 엔씨소프트 등 극소수에 그친다.
백번 양보해서 지난 십수년간 벤처창업 부문이 성공했다고 치자. 그런데 왜 청년구직난 등 실업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졌고, 한국경제는 저성장에 빠져 있으며, 비정규직은 1,000만명에 육박하고, 중산층은 크게 줄어들어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가.
구매력을 기반으로 내수시장이 성장을 하고 창업기업들이 해외시장을 바로 뚫을 수 없다면 창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허구다. 예를 들어 모 택배업체는 배달직원들에게 유니폼을 입히고 친절교육을 하면서 정규직으로 대우해줘 매출도 늘리고 직원도 더 뽑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일자리가 줄어든 다른 택배회사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택배시장, 즉 내수(택배주문 총량)가 성장하지 않으면 창업촉진은 제로섬 게임이 돼 과잉공급과 과당경쟁만 낳기 때문이다.
창업거품 뒤엔 더 큰 실업난 올 것
문제는 한국의 내수시장이 계속 쪼그라들고 있다는 점이다. 포화상태인 자영업(음식점 등) 부문 창업이 왜 그렇게 많이 망하는지 두말하면 잔소리다.
정부가 벤처창업에 돈을 대거 퍼부으면 고용이 반짝 늘어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정부 돈은 바닥나고 벤처창업 거품은 꺼진다. 실업난이 더 독해질 즈음 대통령 임기는 끝나고 관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창조경제 주문서'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다음 고객(정권)을 맞으러 갈 것이다.
후대에 창조경제 방책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에 필적할 통찰력 있는 국가전략으로 길이 남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야 국민들 삶이 나아질텐데… 십수년 전 벤처 현장을 취재했던 필자의 펜이 왜 자꾸 경고음을 울리라고 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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