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소설가 이문열 "MB1년 진보세력에 발목잡혀 큰틀 경제정책 전혀 진전없어"발등의 불끄기 급급 주요공약 착수도 못해대운하도 계량화통해 경제논리로 풀어야지금은 시행착오일뿐… 인터넷 문화 낙관한국서 노벨문학상 배출 가까이 온건 사실 대담:우현석 문화레저부장 hnskwoo@sed.co.kr 정리=강동효기자 kdhyo@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ImageView('','GisaImgNum_1','default','260');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중요한 공약은 착수조차 못했습니다. 이 정권은 발등의 불 끄기에 급급해 당면한 정책들만 내놓았을 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반도 대운하 등 큰 틀의 경제정책은 제대로 풀어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현실에 이 같은 불만을 토해낸 주인공은 정치가나 관료가 아니다. 보수를 자처하면서도 민감한 질문이 쏟아지면 모호한 수사로 당장의 곤경을 모면하는 정치인들을 대신해 나서온 소설가 이문열(사진)씨의 변(辯)이다. 그는 “촛불정국 같은 난리가 날까 봐 한반도 대운하도 정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하다 보니 이제는 물 건너간 것처럼 돼버렸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며 “대통령 후보 당시 공약이었던 만큼 계량화를 통해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우리 사회에 불복의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며 이를 해소하는 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지난 2월25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꼭 1년 된 날입니다. 지난 1년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정부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다’는 경제공약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겨우 했다는 게 부동산 관련 세금완화 같은 건데 이런 것만 눈에 띄니까 그런 비판을 받는 겁니다. 일자리 창출이나 우리 경제의 체질개선 같은 큰 정책들은 이뤄진 게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처음부터 진보세력이 주도하는 불복의 구조에 발목을 잡혀 전혀 힘을 못 쓰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의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 “국가가 시장경제 체제를 지켜주고는 있지만 기업인들의 생산활동을 지켜줘야 할 종교ㆍ문화ㆍ대학 등의 진지(陣地)들이 반기업정서를 표방한 세력에 넘어가 있다”며 ‘이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셨습니다. ▲지금 종교ㆍ대학 등 많은 분야에서 분배를 강조하는 진보세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어요. 최근 각 부문의 사령관격인 단체장들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내부의 분위기는 견고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정부와 기업의 노력이 미흡한 면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방향이 잘못됐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기업은 노조와 같이 물리력을 동원해 위협하는 세력에게는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양보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런 점을 지적한 겁니다. -지난달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부가 한반도 대운하는 안 한다는 식으로 분위기를 몰아가니 이제는 기정사실화돼버렸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통령 후보 당시 공약이니 밀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지난해 한반도 대운하 관련 TV 토론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고 봤는데 문제가 많았습니다.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타협 가능한 논의로 발전하지 못한 거지요. 예를 들면 건설비용도 찬성 쪽에서는 “10조원이면 가능하다”고 하고 반대쪽에서는 “70조원도 모자란다”고 반박합디다. 이렇게 금액의 차이가 크면 타협 자체가 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정부가 나서 국민 여론조사를 하든지 책임 있는 연구조사를 해야 할 텐데 한 발짝 물러나 있어요. 대운하 관련 얘기가 나오면 “안 할 것”이라고 잡아 떼니 언론에서는 ‘대운하 공약이 폐기됐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정식 조사를 해 정부가 확실한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김수환 추기경께서 선종하신 후 일상 속에서 잊고 살았던 사랑과 감사 같은 덕목을 다시 자각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 나는 일이 있습니다. 제가 20대이던 시절 김 추기경이 라디오에 나와 박정희 독재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며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신부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무도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으니 내가 하는 겁니다.” 그때 그 말을 듣고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그 다음부터 저도 이 말을 많이 인용했습니다. “왜 그토록 욕을 먹으면서 보수논객을 자처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무도 안 하니까 제가 한다”고 대답합니다. -용산참사 직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씨는 철거민을 죽음으로 내몬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용산참사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우리가 대의민주주의제처럼 사회의 평온을 위해 정해놓은 규칙이 있잖아요. 분배의 정의를 위한 이념도 있지만 분배 이전에 사회정의를 위한 규칙도 있습니다. ‘굶주리다 못해 불가피하게 도둑질을 했다’는 사회적 정당방위 개념을 도입하면 법이 완전히 무너져버립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사회적 정당방위 같은 추상적 정의를 법률화하지는 않습니다. 독일이 부분적으로 인정하기는 해도 실제 법원 판례에서 이를 용납한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우리 사회는 정치의식의 과잉이 실정법보다 강하게 작용해 늘 이런 마찰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ImageView('','GisaImgNum_2','right','260'); -인터넷 문화를 가리켜 디지털 포퓰리즘으로의 전락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분업화해가는 다매체 시대에 피해 갈 수 없는 사회현상이며 순기능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터넷 문화 전반에 대해서는 낙관적으로 봅니다. 흥미롭게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선보였을 때 당시 사람들도 지금처럼 새로운 문화에 대한 경악과 걱정을 드러냈습니다. 일부 교양 있는 지식계층이 향유하는 정보가 사회를 어지럽히거나 타락시키는 사람들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불과 50년이 안 돼 책 보급은 사회가 발전하는 계기였음이 확인됐습니다. 다만 현재 인터넷 광장은 시행착오의 과정으로 봅니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까운 문인으로 고은 시인과 함께 거론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등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은 왜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벨문학상은 단순히 문학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해당 작가가 ‘문학을 통해 얼마나 인류 복지에 기여했느냐’ 하는 공로적인 측면을 많이 봅니다. 처음부터 저하고는 코드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요. 지난해 이탈리아의 한 신문이 주최한 대담에서도 분명히 말했습니다. “나는 글로 복지증진에 도움을 준 적이 없고 그럴 의도도 없다”고요. 하지만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우리나라에 노벨문학상이 가까이 온 건 사실입니다. 이문열 약력 ▲1948년 서울 ▲1965년 경북 안동고 중퇴 ▲1967년 대입 검정고시 ▲1970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중퇴 ▲1978~81년 대구 매일신문 기자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1994~97년 세종대 국문과 교수 ▲1998년 부악문원 대표 ▲ 2003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 ▲ 2009년 한국외국어대 인문대 석좌교수 ● 이문열은 등단 30년 보수 대표 문인'책 장례식' 고초 겪기도 등단 30년을 맞은 소설가 이문열씨는 보수를 대표하는 문인이다. 보수의 선봉으로 나서면서 그는 필마단기(匹馬單騎)로 진보의 역풍에 맞서왔다. 지난 2001년에는 신문 칼럼에 진보 시민단체들의 행동을 마오쩌둥(毛澤東)의 친위대격인 '홍위병'에 비유했다가 작가로서는 유례 없는 '책 장례식'이라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문열돕기운동'이라는 반어적 이름을 가진 단체 회원들이 이씨의 자택 앞에서 책을 관에 넣고 조시(弔詩)를 낭독하며 모의장례를 치른 것. 이씨는 당시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마치 내 장례식과 다름없었다"고 심정을 고백하기도 했다. 사실 그의 대표작들은 이념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종교에 대한 회의를 담은 '사람의 아들(1979)', 권력의 형성과 몰락과정을 그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 등은 이념을 주제로 다루면서도 관찰자 입장에서 객관적 묘사를 시도한 작품들이다. 그는 "1980년대 운동권 세력이 도움을 요청했지만 내가 정치적 중립을 유지하자 어느새 그들은 '적'이 돼 있었다"며 "처음에는 그들의 비난에 대한 응수였지만 점차 격렬해지면서 나는 어느새 보수의 중심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책 장례식' 이후 적극적으로 보수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그는 2003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그는 이를 두고 "남한에 보수를 내세우는 정당이 없어질 것 같다는 위기의식이 들어서 참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정치색이 뚜렷한 산문집 '신들메를 고쳐 매며'를 내놓은 뒤 2005년 미국으로 홀연히 떠났던 그는 버클리캘리포니아주립대(UC버클리)와 하버드대에서 방문학자로 3년간 머물다 지난해 귀국했다. 그는 "시사적인 발언을 하다 보니 여기에 시간을 빼앗겨 작가로서의 생산성이 너무 떨어진다"며 "작가로서의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던 것"이라고 전했다. 최근 시사성 강한 발언을 하며 다시 주목 받고 있는 그는 "앞으로 작가로 충실할 것"이라며 보수논객으로서는 한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최근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로 임명돼 역사적 인물에 대한 소설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 관련기사 ◀◀◀ ▶ 이문열 "不服의 문화 뿌리 뽑아야" ▶ [서경이 만난 사람] 소설가 이문열 ▶▶▶ 인기기사 ◀◀◀ ▶ 큰소리 치던 '강남의 굴욕' ▶ '불황 잊은 고급주택' 뭔가 특별한게 있다? ▶ 월 490만원 맞벌이, 5년내 20~30평형대 전세가려는데… ▶ 이문열 "MB, 진보세력에 발목잡혀 힘 못쓴다" ▶ 겉다르고 속다른 금융권… 현장선 '퇴출 작업중' ▶ 삼성 '햅틱POP'에 사이렌까지? ▶ 취약층에 月15만~20만원 현금 지급한다 ▶ 저가폰이 사라진다 ▶ 재테크 힘들죠? 그럼 '덤테크' 하세요 ▶ 방금 마신 술도 아닌데… "왜 이제서야 구역질이 날까" ▶ '투자 귀재' 버핏, 석유社 투자 실패 시인 ▶ 커져가는 '싱크탱크 경고음'… 삼성·현대도 불안 ▶ 50% 할인에 경품까지… 디지털제품 사볼까 ▶ 삼성·LG등 채용움직임… 실업난 숨통 트이나 ▶ '확 바뀐' 네이트 메신저 어떻게 달라졌나 ▶▶▶ 연예기사 ◀◀◀ ▶ 신해철 "이 나라는 소신도 세트메뉴로 가야하나" ▶ 붐, 프로게이머 비하발언 논란 ▶ 영화 '작전', 100만 관객 돌파 ▶ '꽃남' 구혜선 교통사고… 주인공들 사고 잇따라 ▶ '고대 엄친딸' 이인혜 최연소 교수 임용 ▶ '가십걸' 최상류층 고교생 라이프 방송 ▶ '생방송 시사360' 얼굴 노출 파장 ▶ '꽃남' 백상예술대상 F4 총출동 ▶ '카인과 아벨' 소지섭 눈빛 연기 절정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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