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산업부 이지성기자
“오죽하면 정부 정책 반대로만 하면 성공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최근 기자가 만난 국내 한 모바일 개발업체 대표는 정부의 소프트웨어(SW) 정책을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정부 정책만 믿고 개발 인력을 뽑고 예산 지원을 기대했지만 수시로 바뀌는 정책 탓에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한다고 했다. 정부 지원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초보 벤처기업’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덧붙였다.
정부의 소프트웨어 육성 정책이 혼선을 빚으면서 국내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전략의 방향을 제시하고 육성에 나서야 할 정부가 정작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오죽하면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작년 8월15일 세계 최대 인터넷업체인 구글이 휴대폰 제조사 모토로라를 인수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하는 본격적인 신호탄이었기에 국내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로부터 1주일 뒤 지식경제부는 돌연 국산 모바일 운영체제(OS)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국내 IT 업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뒤늦게 정부가 주도해서 운영체제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없는 데다 단기간에 개발을 완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결국 지경부는 국내업체의 참여가 저조하다는 이유로 국산 모바일 OS개발 계획을 2개월 만에 백지화했다.
방통위는 올해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기가급 인터넷 상용화를 주요 과제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는 4년 전에도 업무보고에 등장했던 메뉴다. 이쯤 되면 같은 내용을 매년 올리는 방통위의 배짱을 배워야 할 정도다.
IT산업은 민간이 주도하도록 놔둬야 한다는 주장은 전문성이 없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미국의 대표 IT기업인 IBM은 지난 1960년대부터 꾸준한 정부의 지원 속에 성장했고 인류의 삶을 바꾼 인터넷 역시 미국 국방성이 주도한 기술이다.
정부가 급변하는 시장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주먹구구식 정책 입안에 몰두하면 ‘IT 코리아’의 미래는 없다. 지금이라도 관련 정책을 다시 점검하고 우선 순위를 정해 국내 기업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의 정부 정책은 속도도 부족하고 방향도 어긋났다. /engin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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