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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재미 만능의 시대


재미있으면 만능인 세상이다. TV 프로그램에서 웃기지 않는 사람은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가수도 배우도 심지어 기업인도, 기자도 예능감만 폭발시키면 단숨에 인기 순위에 오른다. 눈이 오는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몇 시간씩 눈을 맞는 눈사람 기자나 탈모 현상을 전하며 직접 가발을 썼다 벗는 가발 리포팅 기자는 뉴스의 예능 시대를 연다. 디지털과 결합해 지적 결핍 불러 정치에 무관심하던 젊은 층은 선거에 인증 샷 놀이를 도입해 유희로 승화시킨다. 유명 연예인들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숨 쉰 채 발견'이라는 사망설이 난무하지만 그저 장난질이었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정치 풍자를 표방한 '나는 꼼수다'는 조롱과 비속어, 소문의 확대 재생산 등으로 일종의 개그 콘서트로 자리잡았다. 오죽하면 진보진영 평론가인 진중권씨까지 '나꼼수'에 대해 "증오와 분노를 풍자의 해학으로 승화시켜야지 풍자의 해학으로 증오와 분노를 일으키면 안 된다"며 경박함에 일침을 가했을까. 한국 사회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내달리고 있다. 즉각성이라는 특성을 지닌 재미가 디지털 속도와 결합한 한국 사회의 트렌드는 심각한 지적 결핍 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아무리 한국이 IT 선진국이고 디지털 천하라지만 진지한 고민을 해볼 겨를도 없이 빠른 응답성과 흥미 위주의 것들에만 반응하는 사회 패러다임이 고착화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사교육에 휘둘리며 고교를 마치고 대학에 가서도 취업 스펙을 갖추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젊은 층이 손쉬운 매체나 정보에만 익숙해져 갈수록 책에서 멀어지고 스스로 생각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없다는 것은 미래를 저당 잡히는 일이다. 앨빈 토플러, 대니얼 핑크와 함께 세계 3대 미래학자로 꼽히는 리처드 왓슨은 '퓨처마인드'에서 "종이책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유산과 이해의 일부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하이퍼링크로 둘러싸인 스크린에서의 읽기는 빠른 속도로 사실을 찾아내는 데 적합하다. 반면 종이책은 사색적이면서 전반적인 주장이나 개념을 이해하려 할 때 보다 유리하다. 따라서 이 두 가지 형식의 읽기는 병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슬로푸드와 슬로시티를 갖게 된 것처럼 사고의 속도를 늦추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속도에서 깊이로'를 쓴 미국의 저널리스트 윌리엄 파워스도 "디지털이 가져다주는 마법 같은 일로 세상은 더 가까워졌지만 우리 내면의 중요한 것, 즉 시간을 두고 천천히 느끼고 생각하는 방법을 잃었다"고 설파한다. 갈수록 바빠지고 깊이가 사라지는 요즘 스크린 중심의 쏜살 같은 업무처리속도를 따라가기 위해 재빨리 생각하는 버릇에 길들여지면서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놓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10월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원순 시장을 당선시키는 데 위력을 발휘한 SNS는 빠른 전파력으로 젊은 층 사이에 급속히 확대되고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보격차를 만들어내며 세대 간의 갈등을 악화시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집단동조, 反지성 함정 빠질수도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젊은 층은 점점 SNS 이용이 늘지만 장년층은 SNS로부터 소외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젊은 층이 SNS의 속도와 재미에만 몰두하다가 정작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다 틀렸다는 집단오류를 범하는 건 아닐지 의심해봐야 한다. 전문가들이 인터넷이나 SNS를 통한 집단지성이 만들어낸 집단 동조화가 반(反) 지성이라는 함정으로 빠질 수 있음을 우려하는 이유다. SNS나 인터넷 방송 같은 매체가 젊은 층의 의식을 사로잡는 지금 책이나 신문, 성찰이 가져다주는 진지함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상식이 아닌' 일인지도 모르겠다. 휴대폰도 갖고 다니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편지 등 아날로그 방식으로 소통하는 잠재적 대권주자 안철수 원장은 요즘의 이런 현상에 대해 '상식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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