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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Story] 오화경 아주저축은행 대표

10대 초반부터 연탄장사·만화가게 운영하며 돈 흐름 눈떴죠<br>리스크 관리가 경영 제1 원칙 무리한 영업·대출 절대 안해<br>부실사 맡아 단기간에 흑자전환… 직원들 자신감·희망 심어줄 것<br>독불장군은 조직서 성공 못해 월급 30% 주변 사람에 투자를



1971년 어느 겨울날 경기도 의정부. 당시 열 두 살 소년이던 오화경(54ㆍ사진) 아주저축은행 대표는 영하10도가 넘는 강추위와 칼바람을 뚫고 리어카를 끌고 가고 있었다. 꽁꽁 얼어붙은 비포장도로. 미끄러질 듯 몸을 휘청이다 리어카 손잡이에 의지해 가까스로 무게중심을 잡은 것이 벌써 수차례. 의정부에서 서울 도봉구를 왕복하는 긴 여정이었다. 4시간에 가까운 행군으로 옮기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리어카 위에 켜켜이 쌓인 수십 장의 연탄을 돌아보며 소년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었다고 한다.

은행ㆍ증권ㆍ캐피털ㆍ저축은행 등 25년 동안 금융시장 전반을 아우르며 금융계에서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오 대표의 생애 첫 사업이었다. 그는 연간 800억여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던 아주저축은행(옛 하나로저축은행)을 취임 1년여 만에 흑자로 전환시키며 또다시 금융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줄곧 금융계의 질시와 찬사를 한 몸에 받아왔던 오 대표. 그의 남다른 경영 감각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싹을 틔우고 있었다. 10대 초반부터 일찌감치 돈의 흐름에 눈을 뜨며 '시장에 대한 동물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덕분이다.

"겨울마다 연탄 파동이 반복될 정도로 연탄이 귀했던 시절이었죠. 처음에는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겠다는 생각에 연탄공장을 찾아다니며 연탄을 구해왔는데 집집마다 연탄이 귀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연탄을 떼와 동네에서 연탄 장사를 했습니다. 벌이도 괜찮았어요. 연탄 한 장에 3~5원가량 웃돈을 붙여 팔았거든요."

오 대표는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던 해에 직접 작은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만화가게를 인수하셨는데 사업 경험이 없어 힘들어하셨어요. 결국 제가 학업을 병행하며 가게를 꾸려나갔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종로5가의 만화가게 유통상을 찾아 신간을 구입해오는 일부터 만화책 회수 업무나 고객 관리까지 모두 오 대표의 몫이었다. 2년 가까이 열과 성을 다해 만화가게를 운영했지만 실패의 쓴맛을 봐야 했다.

"동네에 하나둘 만화가게가 들어서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어요. 가게마다 만화책 대여비를 앞다퉈 깎아주기 시작하다 결국 하루에 10원을 내면 무제한으로 만화책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그러다 보니 수입이 눈에 띄게 줄고 수지가 맞지 않아 가게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지요."

10대 중반에 불과했던 오 대표가 경영에서 '차별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대학교 졸업 이후 유진증권(옛 서울증권)을 거쳐 홍콩상하이은행(HSBC)에서 소매금융 업무를 맡았을 때 강박감을 가질 정도로 '서비스 차별화'에 매달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오 대표는 HSBC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매금융을 시작하던 2000년에 문을 연 분당지점을 맡아 신규 고객을 유치해야 하는 중책을 떠안고 있었다. "당시 HSBC를 잘 알지 못하는 고객이 대다수였어요. 어떻게 하면 고객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 끊임없이 연구했어요."

기업체보다는 주거지가 밀집해 있고 주로 40ㆍ50대 여성의 은행 거래가 많은 분당지역의 특성을 활용해 타깃 영업에 나섰다.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초청해 주부 고객을 위해 무료 특강을 열어주거나 고객의 생일에 카드와 작은 꽃다발을 선물로 보내주기도 했다. 금융이나 재테크에 생소한 주부고객에게 몇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꼼꼼하게 재무 상담을 해줬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고객은 오 대표가 직접 자택에서 영업점까지 픽업 서비스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금융계에서는 생소했던 '감성 마케팅'을 시도한 셈인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오 대표의 '차별화된 서비스'에 감동한 주부 고객들이 주변 지인의 손을 이끌고 영업점을 찾아왔다. 오 대표는 "1년 만에 1,000억원의 자금을 예치했다"며 "당시 국내 시중은행의 영업점이 3년이 걸려야 유치할 수 있는 자금 규모였다"고 말했다.

차별화만큼이나 오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영 원칙은 '건전성'이다. 철저한 리스크 관리는 20년이 넘는 금융업 외길 인생에서 절대 타협하지 않던 제1 원칙이다.

2000년대 중반 부동산시장이 한창 과열되며 시중은행이 주택담보대출로 볼륨을 키워나가던 시절. 소득증빙 없이도 아파트 계약서만 있으면 수억원짜리 대출을 바로 승인해주던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당시 개인대출 총괄본부장이었던 오 대표는 소득증빙서류를 가져오지 않는 고객에게는 일절 대출을 해주지 않았다. 일부 고객이 볼멘소리를 하며 불만을 토로했지만 오 대표도 물러서지 않았다. 무리하게 영업 유치에 나서기보다는 정석대로 영업하며 고객과 신뢰를 쌓았다. 오 대표가 개인대출총괄 및 영업총괄 본부장을 맡으며 2003년 1,000억원에 불과했던 HSBC의 대출자산은 2007년 3조6,000억원까지 늘어났다.

"금융업은 건전성이 생명입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금융회사의 부실과 그에 따른 피해가 고스란히 고객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비싼 수험료를 주고 체득했잖아요. 금융회사가 건전성 관리에 소홀하다면 고객에 대한 신뢰를 져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죠."

건전성에 대한 오 대표의 철학은 아주저축은행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2012년 2월부터 아주그룹이 인수한 아주저축은행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오 대표는 1년 반 동안 건전성 확보에 매달리고 있다.

인수 당시 대출자산 3,400억원 중 정상은 57%에 불과했다. 오 대표는 부실 대출은 상각하고 리스크팀을 새로 만들었다. '3ㆍ3ㆍ4 법칙'도 도입했다. 개인신용대출과 담보대출, 기업대출을 30%, 30%, 40% 비율로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오 대표는 "포트폴리오를 분산해 위험을 최대한 줄이겠다는 의도"라고 밝혔다. 아주저축은행은 6월 말 현재 대출자산이 4,500억원으로 늘어난 동시에 부실자산 비율은 17%로 낮아졌다. 오 대표는 올해 말까지 부실자산 비율을 10% 이하로 낮추고 당기순이익 2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주저축은행 대표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또 한 가지 소망이 있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다.

"전신인 하나로저축은행 시절 눈덩이 부실로 회사가 심한 부침을 겪으면서 직원들 상당수가 많이 위축돼 있었어요. 직원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맛보게 해주고 싶습니다. 회사가 직원들의 희생을 발판 삼아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과 회사가 동일한 일직선상에서 함께 성장해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조직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철저한 성과보상체계도 구축하겠다는 생각이다. 조직원들에게 동기 부여 및 긴장감을 불어넣어주려는 의도다.

"직원들 입장에서 객관적인 평가시스템을 구축해 잘하는 직원은 본인 연봉만큼 인센티브를 받아가는 성과보상체계 구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평가 결과 뒤처지는 직원들은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재교육 후에도 실적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보직을 해임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어요."



업무에서는 빈틈이 없지만 금융계에 종사하며 인연을 맺은 후배들에게는 멘토 역할을 자처하며 존경 받는 선배 금융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김 대표는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 금융인들에게 항상 '30%' 철학을 강조한다. 월급의 30%는 자기계발 및 주변 사람들에게 투자하라는 얘기다.

"금융회사도 결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이뤄진 조직입니다. 직원들과 마음이 통하고 신뢰를 쌓아야 조직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독불장군이라면 조직에서는 성공할 수 없어요. 직장 동료와 고객을 살뜰히 돌볼 줄 아는 따듯한 마음가짐(德)이 가장 중요한 리더의 자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화경 대표는…

▲1960년 경기도 의정부 ▲1988년 성균관대 경영학ㆍ회계학 ▲1995년 고려대 재무관리 석사 ▲1988년 유진증권 ▲1991년 HSBC은행 기업금융부 기업신용분석ㆍ기업관리 RM ▲2000년 HSBC 개인금융부 지점장 ▲2003년 HSBC 개인금융부 개인대출총괄 본부장 ▲2005년 HSBC 개인금융부 영업총괄 본부장 ▲2007년 HSBC 차이나 한국기업담당 전무 ▲2010년 아주캐피탈 영업총괄 부사장 ▲2012년~ 아주저축은행 대표이사








"도덕성은 금융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

남의 돈을 내 돈으로 느끼는 순간 사고 생겨
신뢰회복 위해 '윤리강령 제정백서' 발간도

신무경기자mk@sed.co.kr

오화경 아주저축은행 대표의 집무실에는 여타 장식이 없다. 불필요한 장식을 싫어하는 그의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다. 대신 벽에는 액자 하나가 덩그러니 걸려 있다. 유명 작가의 그림ㆍ사진이 아니다. 임직원 수십 명의 서명이 적힌 윤리경영서약서다.

아주저축은행은 저축은행 업계가 불법대출ㆍ횡령 등 도덕성에 대해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던 2011년 하나로저축은행을 인수해 이름을 바꾼 회사다. '하나로'에서 '아주'로 바뀐 뒤 임직원들은 자발적으로 윤리경영을 하겠다고 친필 서명을 했고 이를 액자화했다. 액자는 문을 열면 마주보이는 위치에 걸려 있다. 항상 윤리경영을 마음에 새기자는 취지에서다.

오 대표는 "금융업은 차입(레버리지)를 통해 사업을 만들어 내는 영역"이라면서 "남의 돈을 내 돈으로 느끼는 순간 금융사고가 생기는 만큼 도덕성은 저축은행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지난 1월에는 '윤리강령 제정백서'도 발간했다. 도덕성을 중시하는 오 대표의 생각이 반영됐다. 임직원들은 업계에 대한 고객의 불신을 없애고 신뢰를 되찾기 위해 자체적으로 윤리강령을 선포하고 백서를 발간했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색다른 모습이다.

백서를 내기 위해 윤리의식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임직원들과 고객들의 생각을 반영해 강령 조항을 최종 선택한 뒤 투표를 통해 확정했다. 하반기에는 중간점검을 통해 혹여 놓치고 있는 윤리강령을 찾아 손질할 생각이다.

글로 적힌 윤리강령 제작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사회공헌활동도 꾸준하게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행사로 '연탄 나눔 봉사'와 '생명나눔 헌혈행사'가 있다.

아주저축은행은 지난해 말 '연탄나눔 정기예금 특판 상품'과 연계해 신규 정기예금 계좌당 10장의 연탄을 출연했다. 이렇게 모인 1만2,000장의 연탄은 연고지인 충북 청주의 이웃들에게 나눠졌다. 또 지난달 대한적십자사 혈액원의 헌혈차량을 지원 받아 임직원들이 헌혈한 혈액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 같은 베풂에도 배경이 있다. 오 대표는 월급의 30%를 직원ㆍ동료ㆍ후배를 위해 쓴다. 오 대표는 "군대에 있을 때 중대장이 가르쳐준 착한 버릇"이라면서 "수입이 생기면 일정 부분을 남을 위해 쓰겠다는 게 인생의 철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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