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강남 구룡마을 재개발을 위해 전체 토지 가운데 2~5%를 환지해주는 내용의 환지개발 방식을 최종 확정했다. 환지방식 개발은 기존 토지소유주에게 기존 토지가격만큼 땅으로 보상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강남구는 환지방식으로 개발하면 대토지주에게 특혜를 줄 수 있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어 2년 가까이 끌어온 양측 간 갈등이 봉합되기는커녕 오히려 커지고 있다.
12일 서울시는 SH공사가 마련한 구룡마을 개발계획(안)을 확정하고 조만간 입안권자인 강남구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시가 확정한 개발계획에 따르면 국공유지를 제외한 전체 대상토지 25만6,054㎡ 가운데 4만8,059㎡(단독주택용지 기준 18.8%)를 환지대상으로 결정됐다. 환지대상을 제외한 나머지 토지 20만7,995㎡는 모두 수용해 아파트와 단독 등 주거용지와 공원·학교·상업시설 등으로 개발된다.
환지는 특혜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1가구 1필지를 원칙으로 했다. 예를 들어 4인 가족이 개발지역 내 각각의 필지를 보유하고 있어도 1가구 원칙에 따라 1필지로 환산돼 환지가 이뤄진다. 개인이 대규모 필지를 갖고 있어도 1개 필지로 환산돼 역시 환지가 이뤄진다.
환지규모도 단독주택부지의 경우 최소 165㎡, 최대 230㎡ 규모의 토지를 받을 수 있다. 연립주택은 60~90㎡, 아파트 등 공동주택은 60~120㎡다. 환지대상은 전체 토지의 2~5% 수준이다.
하지만 강남구는 환지방식 개발 변경 자체가 법적으로 하자가 있고 대토지주에게 특혜를 줄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서울시와의 갈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의 한 관계자는 "환지방식을 철회하고 전면 수용·사용방식으로 구룡마을을 개발해야 한다"며 "환지방식이 조금이라도 포함된 개발안에 대해서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남구는 대신 구룡마을 재개발은 100% 수용·사용방식으로 환원해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수용·사용방식은 개발주체인 SH가 모든 토지를 감정가 수준에서 수용해 개발한 후 개발차익을 토지주들에게 나눠주도록 하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수용방식으로 개발하면 초기 투자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현지 거주자의 재정착도 어렵게 된다"고 주장하지만 강남구는 "토지수용 등 초기 투자자금은 금융비용만 들 뿐이고 개발차익은 4,000억원이 되기 때문에 초기 건설비를 제하고도 SH 부채감축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부 환지를 도입한 개발방식을 선택한 것은 초기 투자비용을 줄여 재정착하는 거주민들의 임대아파트 임대료를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분석된다. 토지매입(수용) 비용이 늘어나게 되면 임대료도 덩달아 증가할 수밖에 없어 일부 환지방식이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환지방식에 거부감을 보이는 강남구와의 협의과정에서 환지비율이나 토지이용계획 등이 조정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강남구는 또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구룡마을 문제와 관련해) 신연희 강남구청장의 입장도 살려주면서 함께 갈 제3의 대안을 마련해보라고까지 지시했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서도 "강남구를 배려한 것처럼 보이지만 감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서울시에 대한 여론악화를 희석하려는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전면 수용·사용방식으로 환원해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반박했다.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이 오는 8월 고시 실효를 앞두고 있어 그전까지 양측이 합의하지 못하면 사업이 취소된다. 이 때문에 서울시가 서둘러 개발계획을 마련해 강남구에 공을 떠넘긴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최종 개발계획인가는 강남구청장 권한이다. 강남구청장이 8월2일까지 인가를 내지 않으면 구룡마을 개발사업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달 말 예정인 감사원의 구룡마을 개발방식 변경 과정에 대한 감사결과 발표도 구룡마을 개발을 원점으로 돌리느냐, 속도를 내느냐를 가늠하게 하는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구룡마을 개발방식 변경 과정에 의혹이 제기되자 감사원에 직접 감사를 요청했다. 감사원 내규상 공익감사를 청구한 지 6개월 내에 결과 발표를 하라고 권장하고 있지만 6·4지방선거 때문에 연기돼 이달 중에는 감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서울시는 "법적인 하자가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라서는 서울시와 강남구, 둘 중 한 곳은 구룡마을 사업을 2년 가까이 지연시킨 데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