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57개국의 창립회원국을 맞이하며 출발선에 섰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가입 회원국들로 중국은 한껏 고무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파키스탄 방문은 AIIB가 앞으로 어떻게, 어디에 투자할지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AIIB가 중국의 바람대로 흥행몰이를 하며 출발했지만 중국을 제외한 창립 회원국들의 속내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에서 1차전을 치른 창립회원국들은 앞으로 3일 뒤인 27~28일 이틀간 베이징 회의에서부터 본격적인 지분협상에 들어간다. 단 0.01%라도 더 많은 지분과 의결권을 더 확보하기 위한 또 다른 전쟁에 들어가는 셈이다.
AIIB 가입과정에서 이미 '강대국 상대 외교에서 동요하는 국가(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로 인식된 우리나라 입장에서 AIIB 지분협상은 난관이 예상된다. 물론 우리나라 외교수장은 AIIB 가입과정을 행복한 고민을 통한 최적의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말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향후 협상과정에서 한국의 이해를 최대한 반영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러우지웨이 중국 재정부장은 "지금은 설립협정문에 합의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냉랭한 답을 내놓았다.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AIIB의 지분은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비중으로 보면 3% 내외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구매력 환산기준으로 한다고 해도 3%를 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외교적 명분보다 경제적 실리 우선
하지만 이마저도 온전히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AIIB에 가입한 러시아가 유럽이 아닌 아시아 역내 국가 자격 가입을 신청해 역내 지분율을 갉아 먹을 것이기 때문이다.
AIIB의 지분협상은 정해지지 않은 지분율(x)을 두고 펼쳐지는 방정식이다. 한쪽의 지분율이 늘면 다른 한쪽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번 지분협상에서 우린 무엇을 얻어야 할까. 이미 기재부 협상단이 꾸려진 만큼 전문가들의 협상 전략이 세워지겠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제는 외교보다는 경제에 집중하는 협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분을 통한 우리의 이익 확보가 어렵다면 현실성 있는 대체수단을 통해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좇아야 한다.
실리를 얻기 위해서는 AIIB 내 의사결정에 대한 영향력 확대가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비중 있는 이사회 멤버가 돼야 한다. 이미 총재 자리를 중국인이 차지한 것으로 전해진 만큼 부총재는 한국이 반드시 노려야 할 자리다. 유럽과 인도·러시아 등이 경쟁상대가 되겠지만 미국과의 가교 역할을 강조하며 부총재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연히 국내 국제금융 전문가들의 활발한 참여가 선행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지분협상에서 단일국가 지분에 상한선을 두고 거부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 입장에서는 유럽, 아시아 국가들과 연합해 시도해볼 만한 전략이다. 또 한 국가나 지역에 몰아주기 식 투자가 진행되거나 AIIB가 위안화 국제화의 맹목적인 통로가 되는 것도 견제해야 한다.
AIIB가 우리 기업에 실질적인 혜택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찾아야 하는 과제도 주어졌다. 과거 한국 건설업체들은 중국 고속철도 건설에 의욕적인 참여를 추진했지만 결국 감리 정도의 역할에 그쳤다. 높은 기술력과 풍부한 경험에도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취약함을 드러내며 좌절을 맞봐야 했다. AIIB의 인프라 건설사업 참여 역시 PF가 핵심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다.
영향력 확대 위해 부총재 확보해야
AIIB는 아직 미지의 시장으로 남아 있는 극동 지역 개발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두보가 될 수도 있다. 두만강프로젝트 등 북한·중국·러시아와 연계해 참여할 수 있는 인프라 투자는 한반도 통일에도 중요한 초석이 될 수도 있다.
협상은 실리를 우선으로 해야 한다. 특히 협상 결과에 따라 이익의 크기가 달라지는 국제금융기구에서의 협상은 명분보다는 실리가 우선이다. 외교적인 관점에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축복이란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적 이익을 챙겨야 하는 상황에 축복은 없다. 다만 누가 더 많은 것을 챙기느냐만 있을 뿐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