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을 둘러싸고 벌였던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의 '치킨게임'은 일단 28일 롯데관광개발의 항복으로 일단락됐다.
업계에서는 애초 코레일이 먼저 '백기'를 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공기업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코레일은 부도도 불사하겠다며 압박의 끈을 놓지 않았다. 결국 자칫 사업 좌초가 기업의 존폐에까지 끼칠 영향을 우려한 롯데관광개발은 어쩔 수 없이 자산관리회사(AMC)인 ㈜용산역세권개발 지분 45.1%를 포기하면서 사업의 전권을 코레일에 넘긴 것이다.
◇롯데관광개발 사업 포기 왜=롯데관광개발이 사업 주도권을 포기한 것은 이대로 진행되다가는 부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사업이 좌초될 경우 롯데관광개발이 받을 타격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롯데관광개발은 지금까지 용산개발사업에 출자금 1,510억원과 1차 전환사채 인수금 226억원을 투자했다. 여기에 금융비용까지 더하면 2,0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쏟아부었다. 롯데관광개발의 1년 매출이 400억원 안팎인 점을 감안한다면 용산개발사업 좌초가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셈이다.
롯데관광개발의 한 관계자는 "용산개발사업은 회사의 사활을 건 사업"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애착이 많고 사업 정상화를 위해 부단히 애를 썼던 것"이라고 말했다.
3월22일로 예정된 주총도 롯데관광개발로서는 부담이다. 롯데관광개발은 지난해 51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손실 규모가 5배나 늘었다. 자칫 사업마저 좌초될 경우 경영진의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실제로 28일 롯데관광개발이 사업 주도권 포기를 선언한 직후 롯데관광개발의 주가는 전일보다 7.24%나 급등했다.
일각에서는 자칫 사업이 좌초됐을 경우 발생할 책임을 코레일에 떠넘겼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롯데관광개발이 AMC 지분을 포기하면서 앞으로 용산 개발 정상화의 책임은 코레일 손에 맡겨진 셈"이라며 "지금까지 꾸준히 AMC 지분 양도를 요청했던 코레일의 부담이 오히려 더 커졌다"고 말했다.
◇첩첩산중 정상화의 길… 키 쥔 삼성의 선택은=롯데관광개발이 AMC 지분을 포기하고 증자 에 동의했지만 당장 용산개발사업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코레일의 한 관계자도 "롯데관광개발이 결단은 환영한다"면서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민간출자사들이 1조4,000억원의 증자에 실제로 참여하느냐 여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증자 찬성 여부와 관계없이 실제로 당장 증자에 참여할 수 있는 주주사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로서는 삼성물산ㆍ삼성SDS 등 삼성그룹 계열사가 유일한 구원투수로 꼽힌다.
코레일 관계자는 "사업이 무산되면 삼성물산이 확보한 1조4,000억원 규모의 랜드마크 빌딩 시공권도 사라진다"며 "결자해지 차원에서도 삼성그룹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삼성이 1조4,000억원을 베팅하면서 선뜻 증자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시공권 현물출자 등 당장 현금을 투입하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지만 문제는 기존의 사업계획으로는 사업성이 없다는 것이 삼성 측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서부 이촌동 보상 문제라는 리스크까지 안고 있는데 삼성이 굳이 사업의 전면에 나서는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삼성 측은 "지분만큼의 권리와 책임을 행사하겠다는 입장에 변함 없다"며 "증자를 하더라도 (출자사) 모두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코레일이 어떻게든 삼성그룹이 관심을 보일 만한 '당근'을 제시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시공권 이외에 연면적 109만㎡에 달하는 상업시설 일부에 대한 운영권 등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삼성그룹은 면세점ㆍ호텔 등 용산개발사업에 참여할 다양한 계열사가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코레일이 어떤 카드를 제시하는가에 따라 (삼성의) 입장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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