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의 뿌리인 '한국'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았던 세계적인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한국명 유동룡·1937~2011)이 세상을 뜬 지 오는 6월로 꼭 3년이 된다.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자란 이타미 준은 공항 이름과 친구의 예명에서 각각 따온 필명이다.
그는 평생을 재일동포가 아닌 '한국인'으로, 이타미 준이 아닌 '유동룡'으로 살기를 원했다. 일본 무사시 공대 건축학과를 나온 그는 1968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뒤 한국 고건축, 정확히 말하면 '조선건축'에 매료됐다. 40년 이상 일본과 한국 등을 무대로 한국의 전통미와 자연미를 살린 건축물들을 지어왔다. 그는 자연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흙·돌·나무 같은 소재로 온기가 느껴지는 건축을 지향했다. 시대와 전통의 틀을 넘어 그 지역의 문맥(Context)을 재해석해 건축물에 녹여내곤 했다. 그래서 이타미 준은 예술과 건축의 경계를 오가며 현대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세계적 예술가로 평가 받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이 재일동포 건축가 이타미 준의 예술 세계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전을 오는 7월 27일까지 개최한다. 국내 최초로 개최되는 이타미 준의 대규모 회고전인 이번 전시회는 일본에서의 1970년대 작업부터 말년의 제주 프로젝트까지 40여년에 걸친 그의 건축 세계를 아우른다. 지난해 미술관에 기증된 이타미 준의 아카이브와 유족 소장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는 건축 작업뿐만 아니라 회화·서예·소품 등 500여점이 선보여 그의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 전시로 평가할 수 있다.
획일화된 산업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반근대적인 태도로 현대건축을 실천하고자 했던 이타미 준은 조형의 순수성과 소재 자체를 강조하며 날것의 감각이 돋보이는 무겁고 원시적인 건축을 추구했으며, 말년의 제주도 작업은 이타미 준 건축의 원숙미를 보여준다. 살아있는 자연의 힘인 바람과 이타미 준의 건축이 만나면서 그의 작업은 절정에 달한다. 수(水)·풍(風)·석(石) 미술관, 포도호텔, 방주교회 등 2000년대 이후 제주에서의 작업은 자연과 동화된 건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특히 물·바람·돌 그 자체를 품은 수풍석 미술관은 이번 전시에서 '또 다른 물·바람·돌'(감독 정다운, 제작 김종신) 영상을 통해 자연에 반응하는 건축의 시간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이타미 준 작업 의식의 뿌리를 살펴보는 '근원'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해 거칠고 날선 감각이 돋보였던 일본에서의 작업부터 바다의 품을 닮은 제주도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일대기가 펼쳐진다.
1부 '근원'에서는 이타미 준의 회화 작업, 서예, 공예품, 저술 등이 망라되며 2~4부까지 '전개'에서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타미 준의 건축 여정을 따라가며 시대순으로 그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5부 '바람의 조형·제주 프로젝트'는 수·풍·석 미술관을 비롯해 포도호텔, 두손미술관, 방주교회 등의 아카이브를 전시한다. 마지막 전시장인 6부는 이타미 준의 딸이자 건축가인 유이화 씨가 작가의 소품으로 재현한 도쿄의 아뜰리에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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