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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보다 매년 높은 성장률을 보여왔다. 그럼에도 요즘처럼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최근 10여년간 이런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됐다. 예컨대 2010년 기준으로 한국의 상위 1%가 차지하고 있는 소득 비중은 전체의 11.5%로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의 6.97%에 비해 거의 두 배가 늘었다.
경제적 불평등은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고 심화될수록 병리학적인 사회 문제와 맞물려 돌아가게 된다. 실제로 한국은 자살률, 노인 빈곤율, 청년 실업률, 해외 성매매율, 술 소비율, 낙태율, 저출산율 등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빈부의 격차가 심화될수록 사회는 곪고 뒤틀릴 수밖에 없다.
결국 이런 문제는 정치가 해결해줘야 하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주문처럼 되뇌듯이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그 혜택이 자동적으로 나눠지는 것이 아닐뿐더러 시민단체와 종교단체의 자선에 기대기엔 문제들이 너무 크고 구조적이다. 더 이상 효율성과 도덕적 양심이라는 말로 삶의 경계를 위협하는 심각한 불평등을 방치해선 안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의 지배적 담론은 여전히 ‘정치 불신’이 차지하고 있다. 누가 이런 담론을 만들어내고 확산시키는가. 그것이 확산될수록 이득을 보는 집단이 누구인지를 살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과거엔 군부가, 최근엔 재벌과 관료들이 이런 정치적 냉소주의를 퍼뜨리고 있다. 정치의 개입이 시장의 자기 완결성을, 혹은 관료의 전문성을 해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정치가 배제된 빈 공간은 결국 사회적 약자가 아닌 기득권 엘리트들이 장악하곤 했다.
지금은 정치의 시대다. 정치가 앞장서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 다칠까봐 가시로 온 몸을 두른 장미꽃이 아니라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도 기어이 꽃을 피우고 마는 연꽃과 같은, 즉 ‘정치 냉소’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정치의 영역에서 문제를 풀어내려는 단호한 의지를 가진 자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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